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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pr 24. 2016

죽을 수 있는 권리와 죽음에 관하여

2014.02.18


  이 글은 KBS 다큐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를 보고나서 쓰는 글임을 미리 밝히는 바 입니다.


  2012년 세계보건기구의 조사결과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이 81세라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오래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걸리는 질병 자체가 나아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극복한 질병도 많이 있겠지만 암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은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인간의 수명은 늘었지만 식습관은 더 나빠지고 운동량은 줄어들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양한 원인으로 소모되는 장기의 기능과 신체기능을 수술이나 병으로 늘려놓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정말로 죽기가 어렵습니다. 암에 걸려도 항암제의 투여나 그 외의 연명치료로 기력이 다 빠지고 온몸에 통증이 24시간 느껴져도 죽지 않습니다. 큰 사고가 나서 숨을 쉬지 못해도 기관 내 삽관으로 기계가 대신 숨을 쉬어줍니다. 심장이 고장 나면 대신 심장을 대신 달고, 폐가 고장 나면 기계가 대신 숨을 쉬어주고, 신장이 고장 나면 기계가 대신 신장구실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모든 장기에 한계가 올 때 까지 사용하고 죽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장기의 일부가 망가지면 그 망가진 장기가 원인이 되어 사망을 하거나 질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하면 모든 장기가 노쇠화 될 때 까지 쥐어짜고 쥐어짭니다. 그러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밥을 먹어도 괴롭고, 대장기능이 떨어져서 소화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치매까지 오면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괴롭게 되지요. 호흡기나 기관지 기능이 떨어지면 숨을 쉬기도 괴롭고, 무릎관절이 아프면 움직이는 자체가 고통스럽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진다는 겁니다. 그래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으니까요.


  노화과정이 아니라 질병으로 보면 문제가 더 크게 드러납니다. 기관 내 삽관술을 하게 되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게 됩니다. 삽관을 하면 그 자체로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계속 마취를 합니다. 그러면 정신도 없고 한번 삽관을 하면 뺄 수도 없습니다. 그냥 다른 이유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케이스가 다시 괜찮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항암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암투병은 암 그 자체보다 항암치료를 사용한 치료가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항암제를 투여하면 백혈구 수치도와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저하되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할 뿐 아니라 계속 토를 하고 그 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것들로 인하여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치료를 하고 항암제를 투여하고 하루의 모든 시간을 괴로워하면서 죽게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분명히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암제의 투여는 저와 같이 빠른 시간 안에 낫게 된다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수 있지만(물론 그렇다고 해도 잃은 게 많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괴로운 치료를 받으며 얻는 것 없이 괴로움만을 얻으며 죽습니다.


  만약 다시 재발한다면 저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누가 저를 설득해도 절대로 받지 않을 겁니다. 그냥 그대로 통증조절을 열심히 하다가 마무리를 가능한 잘하고 죽을 겁니다.


  본인의 의사를 무시한 채로 치료를 계속 하는 것은 환자의 가족이나 보호자, 의사가 "나는 최선을 다 했다. 할 만큼 했어" 라는 생각을 갖기 위한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와 치료를 다 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관계들과 갈등들로 치료를 계속 하는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의 의지 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사전의료지시서'라는 게 있습니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삽관술, 생명연장치료 등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도록 미리 사전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전의료지시서(지향서) 외에도 분명하게 이루어져야 할 죽음의 선택에 관한 사회적 동의와 법적 동의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삶의 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죽음의 질입니다. 마지막순간까지 괴로워하며 가족들을 보지도 못한 채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분명히 없을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이 오면 가족들에게도 마무리의 순간이 필요하지만 환자에게도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하며 그것이 추구해야할 진정한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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