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상념

환원의 행위들

by 한승훈

2016.02.20


어제는 아침부터 CGV 어플을 뒤졌다. 기분이 썩 좋지 못한 것이 이유였는데, 보고 싶은 영화들이 나의 일정과 맞지 않아 도리어 불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마냥 즐겁고 싶어 토요일 오전 조조로 데드풀을 예매하고 일요일에는 평일에 바빠 주말로 치워놓은 대니쉬걸을 예매하려 했으나 저녁에 성당 일정이 있어 영화를 볼 물리적인 여유가 없었다. 성당 활동을 썩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올해는 특정한 자리를 담당하여 내 맘 편하게 빠지기 어려웠다. 아쉬운 마음에 월요일 저녁 사울의 아들 라이브톡을 강변으로 예매했으나 아침 회의 때 다음 주 월요일 회식이 잡혀 또다시 취소했고, 오늘 저녁에는 회의를 하는 식사 모임이 있어 밤에도 여유를 만들 수 없었다.


그렇게 계획한 대부분의 일정이 틀어지면서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영화를 보려고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며칠에 걸쳐 몇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정을 조절하거나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한데, 나에게 그 정도의 공백은 없었을 뿐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그러한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굳이 비틀고 꼬아서 영화를 보려 하고, 무리한 추진으로 틀어진 계획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놓아버릴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나는 평소 "알게 뭐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이 문장은 나의 역할이 없을 때나 그것에 내가 상관이 없을 때에 한한다.)


어쨌든 나도 대부분의 일들을 흘려넘김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사건 자체가 마음속에 걸려있게 되거나, 생각할수록 화가 나게 되는 일은 없지만 흘려넘기는 상황 자체에 에너지가 소비되어 머리가 혼탁해지기 때문에 심리를 비우고 환원시키고자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보통 환원의 행동이라 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거나 취미생활에 집중하거나, 이성을 만난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등의 행위들인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여행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가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다. 여행을 좋아할 듯한 이미지로 보이는지 내가 여행을 크게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보통 의아하게들 생각하는데, 나도 스스로 왜 여행에 대한 욕구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보았었다.


지난번 글쓰기 모임에서 여행을 가는 두 가지 경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첫째는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경우였고 둘째는 무언가를 버리러 가는 경우였다. 두 가지 모두 환원의 과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볼 때 삶의 과정으로 자신이 텅 비어버린 사람이라면 여행으로 무언가를 채워서 나오고 싶을 테고 생의 어려움과 복잡함에 마음에 든 것이 너무 많아진 사람이라면 여행을 통해 그러한 상념들을 놓고 오고 싶을 것이다. 즉, 여행은 빠지지 않는 거목을 치우고 새로운 나무를 심어오는 과정인 것이다.


나도 당연히 위와 같은 환원의 욕구를 가지고 있고, 나에게서 나오는 환원의 행동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영화를 보는 것이다. 영화에 집중하는 과정을 통해서 머릿속에 있는 먼지 덩어리를 치우고 새로운 자극과 생각을 집어넣어 그동안 나에게 없던 사고의 과정을 갖고자 한다. 내가 집이 아닌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역시 이유가 있다. 나에게 집이란 사고와 생각을 하는 곳이고, 지금 나에게 있는 거목의 뿌리가 내려있는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에서는 아무리 영화를 집중해서 보아도 새로운 사고의 증식이 어렵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사고를 쉽게 번식시킬 수 있는 곳에 가려는 것이다.


또 다른 큰 환원의 행위는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특히 나와 같은) 글을 쓰려면 사고의 증식과 번식이 반드시 필요하고 평소의 삶에 있어서 항상 머리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즉, 나는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무언가를 버리고, 비어버린 것을 채우기 위해 머리의 문을 열어 무언가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나를 조각해간다.


그러면 이제 그 외의 행위들도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책을 계속 보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모두 환원의 과정인 것이다. 글을 쓰고 나를 조각해가며 머리를 비우고, 영화를 보며 배터리를 갈아끼운다. 이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라는 욕구를 느끼지 않게 된다. 물론 나도 여행을 하면 당연히 새롭고, 즐거우며 새로운 자극을 받거나 마음이 편해지게 되겠지만 환원을 하고자 하는 여행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으니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을 때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외에는 별로 없다. 그마저도 "그 사람과 함께"니까 좋은 것이지 여행 장소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이나 주변이 권유하는 것들을 해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들도 모두 각자의 환원의 방법을 가지고 있고, 자기들이 했을 때 도움이 되는 것들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알려주는 것이니 내가 알지 못하는 체험을 통해 또 다른 자극을 받아 나의 조각이 새롭고 더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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