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투병기

5년이 지나서야 쓰는 암투병기 (1)

by 한승훈

2013.10.13


2008년의 나는 매우 바쁘게 살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교수님 개인 조교를 하고 있었고 동시에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사회복지학과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해서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수업이나 과제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행정학과 학생이었던 나는 점수를 잘 받기도,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또 성당에서는 초등부 교리교사를 하고 있었고 학교 가톨릭 동아리에는 회장이었다. 바쁘게 사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과 동의어라고 믿었고 그렇게 하고 싶기도 했다.


헌데 2008년 가을쯤이 되어갈 무렵 허리와 등이 아프기 시작했다. 원인미상의 통증은 밤마다 나를 괴롭혔고 병의 치료를 위해 여러 곳의 병원을 돌아다녔다. 통증을 없애기 위해 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된 통증을 잡기 위해 신경외과나 정형외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물리치료를 받으면 훨씬 나은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 겨울이 되자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더욱 괴롭혔다. 밤마다 119를 불러 병원에 가기를 몇 번 반복하자 구급대원은 나에게 엄살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2009년 4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교수님 개인 조교를 그만두고 학과 사무실에서 조교를 돕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연합회장을 역임했고, 초등부 교리교사도 계속하고 있었다.


2009년 2월경에는 학교를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10분 거리의 학교를 올라가는 데는 20분, 30분이 걸렸고 올라가고 나서도 땀을 뻘뻘 흘려 수업을 제대로 듣기조차 어려웠다. 그때 나의 체중은 이미 5kg 이상 줄어있었다.


계속되는 복통으로 나는 지역의 2차 병원을 찾았고 그 병원의 외과의사는 충수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맹장수술을 받았고, 학교의 몇몇 친구들이 문병을 오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제 아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맹장 수술이 끝나고 난 뒤에도 통증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심한 통증이 계속되던 어느 날 맹장 수술을 해준 의사가 자리에 없어 다른 의사의 진찰을 받게 되었다. 그 의사는 나의 목 왼쪽 부분에서 혹 같은 것을 발견해 곧 바늘로 조직 검사를 실시한 후 나에게 CT 촬영을 권했고, 나는 그 병원에서 간단한 복부, 흉부 CT를 촬영했다.


며칠이 지나 진료를 간 나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악성 림프종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합니다." "조직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확실한 것은 없지만 CT 촬영 소견으로는 림프종인 것 같습니다." 의사는 그 자리에서 삼성서울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써 주었고 바로 진료 날짜도 잡아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도, 엄마도 그게 뭔지 전혀 몰랐다.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림프종을 찾아보니 임파선암이라는 검색 결과가 나왔고 여러 번 읽어보았지만 특별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다음날 병원에 갈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삼성병원에 가서 CT 촬영한 것을 돌려주고 피검사와 함께 엑스레이 등의 검사를 진행했던 것 같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당시의 기억이 소실되어 2차 병원에서 3차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삼성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을 때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다.


긴 검사시간과 대기시간이 지나고 삼성병원 여의사의 진료실에 들어갔다. CT 검사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선생님은 "암이에요, 혈액암인 것 같고요 임파선암으로 생각됩니다. 당장 입원해서 치료받으셔야 해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암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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