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고 느리게...
한여름 밤에 읽는 <장자>의 맛이 남다릅니다.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밤바람과 풀벌레 소리 들으며 그저 고전의 한 귀퉁이를 붙들고 생각에 잠기면 그게 바로 여름휴가가 아닌가 합니다. 호들갑 떨며 어디 가지 않아도 장자의 서늘한 글귀를 끼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게다가 장자는 ‘비워내고 느리게’가 그 핵심이기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가슴 가득 ‘비움’으로 채워집니다.
이 여름밤에 장자를 집어 든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장자는 분주한 마음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유기계자 필유기사 유기사자 필유기심(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무엇을 꾀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장자>의 '천지'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마음을 경계 하는 말인데, 앞뒤 정황은 이렇습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길을 걷다가 한 마을에서 밭에 물을 주고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물구덩이에서 항아리로 힘들게 물을 푸는 게 안쓰러웠나 봅니다. 자공이 기계를 설치하면 물 푸기가 더 쉬울 것이고 그 기계가 두레박이라면서 권합니다.
그런데 노인은 거절합니니다. "기계를 갖게 되면 그 기계 탓으로 일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기계에 마음을 사로 잡혀 결국 본성이 안정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답합니다. 자공은 경제적 관점에서 효율성이 좋은 기술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노인은 사양하죠. 효율을 추구하면 간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어쩌면 스마트폰 없이 못 사는 지금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MD, PDA, 전자수첩처럼 한때를 풍미했던 전자기기들도 쓸쓸한 종말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지금의 스마트폰 또한 하나의 두레박이 되어 그것에 구속되어 버리지 않겠냐는 거죠. 물론 이 시대에 내려놓는 것이 정답이라 말할 순 없겠지만 때론 바쁜 걸음을 멈추고 본성의 속도로 되돌아갈 필요성을 느낍니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용량이 꽉 차면 작업 실행 속도가 느려지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습니다. 빈 공간이 넉넉해야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솔루션을 장자에서 다시 빌려봅니다. "남을 위하기 때문에 자기는 더욱 여유로워지며, 남에게 주기 때문에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 그러므로 비운 사람은 행복합니다.
비움으로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늘 로그인되어있는 이 시대에 비울 수 있는 삶을..
올여름 마음의 휴가를 궁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