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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16. 2016

영화 '나의 산티아고' 후기

'신'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라는 존재 

혼자만의 시간이 꽤 많은 편이지만 혼자 여행을 다녀 본 경험은 거의 없다. 간혹 다니는 지방출장이나 몇 차례의 국외출장을 여행으로 쳐준다면 꽤 많은 여행을 다닌 셈이지만 출장은 출장일뿐이다.   

   

내 인생의 여행은 늘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였다. 수학여행과 신혼여행이 그랬고 졸업여행이나 몇 번의 가족여행이 내 여행리스트의 전부다. 작년에 다녀 온 보름간의 영국여행이 그나마 조금 여행다운 여행이었지만 그 역시 혼자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단연 혼자여행이 아닐까.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800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 온 사내의 실화를 영화로 엮었다. 산티아고 순례 길은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하나이자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예수의 죽음 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영적 영감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쉽지 않은 코스다.  

    

영화에도 주인공 하페가 여행자들의 공동숙소에서 이런 인증을 받는다. 100km 이상을 도보로 순례하는 모든 순례자에게 인증서를 준다고 한다.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쪽에 위치한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인데 스크린에는 양들이 풀을 뜯는 목초지와 산길,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지대와 구릉지대의 풍경이 두시간 내내 펼쳐진다.    

  

주인공 하페는 인기와 부를 누리는 남부럽지 않은 유명인사다. 그는 공연 중에 쓰러져 수술을 받은 후 의사로부터 3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라는 조언을 받는다. 사회적 성공의 의미가 늘 그렇듯 그의 성공 역시 신체와 정신의 여유로움 따위가 포함되었을 리 없다. 그는 집 안에서 뒹굴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이끌어 온 신이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순례길 고행을 자처한다.      

하페는 틈나는대로 여행에서 얻은 교훈을 한 두줄로 정리한다. 혼자만의 여행은 이런 장점 때문에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사색하고 기록하겠는가.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하페의 여정을 따라갈 뿐이다. 훗날 자신의 여행기가 된 그의 작은 수첩이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주제의 전부다. 하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신체의 고통과 불편함, 외로움과 공포, 다양한 여행객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교훈을 얻는다. 800km 42일간의 고행을 통해 얻어낸 교훈들이라고 해봐야 마치 초등학생들의 도덕교과서 구절 같다. 그러나 그렇게 몸을 바쳐 얻어낸 교훈과 교과서에서 다루는 공자말씀을 비교할 수는 없는 법. 



하페가 길에서 만난 친구들. 생각도 목적도 다르지만 이들은 길에서 만난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산티아고 순례 길을 계획하는 분이나 홀로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들, 당장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청춘들, 육체적 고행을 통한 정신의 자각에 관심 있는 분들, 백패킹, 트레킹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에 관심 있는 분들, 발로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자신과 만나고 싶은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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