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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l 05. 2016

영화 '심야식당' 후기

나누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한 때 유행했던 음악에는 그 한 때의 기억이 여성잡지의 부록처럼 딸려온다. 그래서 oldies but goodies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음식도 그렇다. 식당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가면서 잊고 있던 음식냄새와 마주칠 때, 과거의 한 순간이 마치 낚시 바늘에 끌려나온 붕어처럼 뻐끔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나에겐 멸치국물에 호박과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여주셨던 어머니의 수제비가 그렇다. 요즘도 비만 오면 그 생각이 난다. 겨우 밀가루 반죽을 조금씩 떼어 멸치국물에 풀어먹는 저렴한 음식이지만 어머니의 손맛이 오롯이 느껴지는 수제비만큼 나에게 위안이 되는 음식은 없다.


영화 <심야식당>은 음식으로 위로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부와 사별하고 실의에 빠진 ‘다마코’와 외판업을 하는 가난한 청년 ‘하지메’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음식은 계란 전을 깔고 야채와 면을 토마토소스에 볶아 만든 ‘나폴리탄’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수돗물을 들이키며 굶주림을 참아야 했던 소녀 '미치루'에게는 할머니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마밥'이 특별한 힘이 된다. 불륜관계였던 상사로부터 버림받고 단지 도쿄를 떠나고 싶어 봉사활동을 나섰던 ‘아케미’와 그녀에게 도움을 받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었던 ‘켄조’에게 위로가 되어준 음식은 마스터의 ‘카레’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저렴한 음식들이지만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삶의 위안이 되어주는 특별한 만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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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은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내가 혼자 꾸려간다. 사내는 말수가 많지 않은 중년이다. 그는 손님이 두고 간 납골함을 육 개월이 넘게 모시고 제사까지 치러주는 사람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마땅히 기거할 곳이 없던 미치루를 거두어 주는가 하면 짝사랑을 찾아 무작정 도쿄로 온 상처 많은 사내 켄조의 숙취를 달래주기도 한다. 그는 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이라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 내놓는다. 그러나 그의 음식에는 드러나지 않은 잔정이 그득하다. 식당을 찾는 단골 손님들의 면면도 정겹다. 외모따위는 절대 신경쓰지 않는 어디서나 볼법한 아저씨들과 수다스러운 노처녀들, 야간업소에서 일하는 쇼걸과 게이, 건달은 물론 홀로 파출소를 지키는 경찰관이 식당에서 음식을 마주한 채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나눌수 있는 음식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평화로운 천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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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야식당>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다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드라마 세트장을 그대로 썼을 만큼 매니아들에겐 익숙한 컨셉이다. 그러나 만화를 보지 않은 나같은 관객들도 쉽게 동화될 수 있을만큼 따뜻한 분위기의 영화다.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지하에 있는 마트에 들러 요리재료들을 잔뜩 구입했다. 지글지글 기름 판 위에서 네 가닥으로 갈라져 토도독 소리를 내며 씹히는 비엔나 소세지, 네모난 후라이팬 가득 부쳐 돌돌 말아 내놓는 계란말이와 함께 맥주한잔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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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심야식당' 후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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