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구석구석을 볼수 있게 눈이 반대로 달려있다면 어땠을까. 가슴이 조여드는 통증을 느낄 때 바로 허파꽈리를 들춰 볼수 있겠지.
길고 긴 식도를 따라 위장을 타고 내려가는 속쓰림 때문에 내시경을 밀어 넣을 일도 없었을 꺼야.
알고보면, 내 것이면서도 죽을 때까지 단한 번 보지 못하는 오장육부의 안녕을 위해 평생을 허파꽈리같이 쪼그라들어 사는거야. 모두.
그래도 눈이 밖을 향해 달려있길 참 다행이지. 가끔 내 속 들여다보고 문드러진 상처에, 곪아터진 환부에 새살이 나도록 만져주는 사람을 알게 된것도 밖을 향해 뚫린 눈 덕분이잖아.
자가진단은 하지 못해도 꼼지락거리는 허파꽈리나 창자따위 봐서 뭐하겠어. 밖을 보는게 오히려 나를 제대로 보는 것. 삶은 나 아닌 사람을 보면서 이뤄가는 것.
사랑도. 시도. 예술도. 결국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