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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Sep 13. 2018

순직경찰관 내 친구 광재에게

고 이광재 경장의 기일(97년 10월5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잊혀진다는 것은 두려운 거야. 너의 이름도, 너에 대한 기억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지. 같이 뒹굴던 스무 명의 동기들 그 누구에게서도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어. 그 이후로. 십오 년간.



경북 군위라고 했던가. 낯설었던 네 고향의 이름이 아직까지 기억나는 건, 너의 투박한 웃음, 항상 입가에 고여 있던 흰색 거품, 그리고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새겨지던 이마의 굵은 주름 때문이었던 것 같아. 아니, 그 보다 취침 점호가 끝나면 슬며시 내 쪽으로 몸을 뉘여 투박한 사투리로 도란도란 말을 걸던 너의 표정이 그 낯선 지명과 겹쳐졌기 때문일 거야.



한 번 가보지도 않았던 너의 고향이 나에겐 그렇게 정겹게 다가왔었어. 군위에는 칠십이 다 된 노모와 결혼한 누이가 살고 있다고 했지. 졸업을 하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입꼬리가 움찔움찔 올라가며 어색한 웃음을 짓기도 했었어. 너. 기억하니?너는 그렇게 순박한 친구였어.



대나무 작대기가 들어가 엄청나게 무거웠던 진압복을 잠시 벗고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우던 훈련시간, 너는 곰팡이가 피어 독한 냄새를 풍기던 그 진압복을 엉덩이에 깔고 앉아 허연 입김을 한꺼번에 몰아 내쉬었지.



이렇게 사는 게 어쩌면 지금까지보다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래? 정말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단 말이지?



싱글벙글 웃는 너의 표정 뒤로 감추어진 그늘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 말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짧은 휴식시간을 끝내고 나면 우리에겐 어김없이 더 힘들고 짜증나는 진압훈련이 이어지곤 했지. 난 교통경찰이 될 거야. 그래서 파란 제복을 입고 수신호를 하는 거지. 크크. 너의 과장된 팔 동작에 동기들이 모두 한바탕 웃음을 짓고, 에라, 이 녀석아 똑 막걸리 순사 같다. 농담도 해댔었지..



졸업식을 하던 날 기억나니? 아무도 축하해주러 오지 않았던 너나 나 같은 친구들 몇몇이 모여 경찰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수안보 관광단지로 밥을 먹으러 갔었지. 같이 해장국인가를 먹고 나서 고향으로 가야 할 시간, 아쉬운 마음에 식당 앞 마당에서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있는데. 생머리가 눈에 띄는 어느 여인이 마냥 인상 좋아보이던 너에게 다가왔었지.



차 문이 잠겨서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우리는 녀석 인상 더러운데 왜 하필 녀석에게 말을 거셨어요? 큭큭거리며 그녀의 차로 다가갔었지.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차와 씨름을 하다가 결국 네가 만들어온 쇠꼬챙이로 차문을 열어주고, 하하 아닙니다. 사례요는 무슨.. 괜찮습니다. 그렇게 돌아섰었지.



너는 무척 착했어. 집으로 가야할 시간 그렇게 첨보는 남의 차문을 열어주기 위해 한 시간 넘게 끙끙거리는게 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이냐고. 니 덕분에 나도 귀가가 늦어져 결국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난 후에야 집으로 들어갔던 생각이 나. 자식, 오지랖하고는..



경찰이 되고, 정말 제복이란 걸 입고 갑자기 낮과 밤이 바뀌는 혹독한 근무 속에서 파김치가 되어 있던 어느 날, 그 날이 임용하고 한 일주일 쯤 되던 날이었을 거야. 저녁을 먹고 있는데 TV뉴스에선가 얼핏 너의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았어.



 -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중 경찰관 한명이 음주차량에 치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으나 사망했습니다. 순직한 이광재 순경은 올해 스물 일곱의 신임 경찰관으로, 임용 된지 일주일 만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



뭐라고? 이광재? 음주단속 중 사망이라고? 나는 TV를 이리 저리 돌려가며 뉴스를 기다렸지만 다시 너의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어. 그때는 핸드폰도 뭣도 귀하던 시절이었잖아. 급하게 수첩을 뒤져 졸업한 동기들 명단에 있는 너의 집 전화번호를 찾았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전화를 걸었는데 누가 받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어머니? 누이? 어떤 여자가 전화를 받아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목소리를 내더군.



광재 있어요? 광재 좀 바꿔주세요. 흐끄억. 끅, 강재가. 끄억..끅. 여보세요. 여보세요. 광재 좀 바꿔달라니까요. 흐억. 꺽.그리고 전화는 끊어졌어. 나는 다시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러지 못했어. 어린마음에 무섭기도 했고. 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나봐.



광재야. 그 이후로 십 오년, 세월이 바뀌었고, 나도 어엿한 중고참이 되었지만 경찰관으로 살아오는 고비 고비마다 너에 대한 기억을 잊어본 적이 없어.


너의 몫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 그게 일이든 승진이든 말야. 아직 창고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는 너의 사진 뭉치를 들고 언젠가는 너의 모친을 찾아가겠다는 내 마음 속 혼자만의 약속을, 글쎄. 언젠가는 지킬 수 있겠지.



고장 난 남의 차문을 고쳐주는 것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네가 음주단속을 하다가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거야 하나도 없지만,오늘 갑자기 너의 생각이 난 것은 강원도 어디에선가 어떤 경찰관이 교통사고 처리를 하다가 감전사고를 당해 순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떄문이이야. 경기도 어디에선가는 소방관 몇 명도 순직했다네.



아마 살아있었다면 너도 이 분들 나이쯤 되었겠지. 어쩌면 너에게도 몇 명의 아이와 순박한 눈매의 아내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광재야. 그렇게 죽어간, 너같이 죽어간 선배, 후배들이 창경 이래 이천 명이 훌쩍 넘는다는구나. 한해 사십 명은 족히 순직을 하고 있는 셈이네. 화염속에서 목숨을 잃은 소방관들까지 하면 아마 족히 사천명은 넘을 것 같아. 국민의 생명과 신체,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고 다짐했다고는 해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니.



누군가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면서 큰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으로 수천 명의 형사들을 오라 가라 한다던데, 그렇게 누릴 거 다 누리고도 정년퇴직한 검사가 역사이래로 손에 꼽을 정도라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믿을 거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던 너, 아니 우리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온몸 만신창이가 되어도 그 흔한 훈장 하나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정년퇴직까지 경찰관 하는 것을 무슨 대단한 사명의 실현인 것처럼 생각해왔구나. 바보 같이 말이야.



광재야, 내 친구 광재야. 대전국립묘지는 너무 황량하여 이름 석 자만으로 너의 무덤을 찾기도 쉽지 않더구나. 잊혀진 이름이라 그럴 거야. 이제 아무도 찾지 않겠지. 살아계시다면 팔십은 족히 넘기셨을 너의 모친과, 너에게 편지를 써주던 너의 누이만이 아직 가슴 속에 너를 묻고 기억하겠지.



이렇게 싸늘한 날, 과거를 잊어버린 채, 작고 딱딱한 비석 아래 누워있을 너를 다시 이렇게 불러내게 되어 미안하다.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이십년, 네가 했던 것처럼 내 목숨을 내놓을 자신은 없다만, 나 또한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응당 그리 하게 되겠지. 그게 경찰관의 숙명이라고 나는 생각해.



중앙경찰학교 97기 내 동기. 광재야. 언젠가 따뜻한 봄이 오는 날, 다시 만나 쇠주나 한잔 나누자.  입김 때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던 너의 큰 눈망울이 생각나네. 들어가라. 그만, 광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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