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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May 09. 2016

사이코패스, 이쯤되면 만들어진 공포 아닐까

프로파일러가 범죄자 감별사로 소비되는 사회

연쇄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가 발생하면 범인이 사이코패스인지 추측하는 기사들이 난무한다. 살인사건 수사가 미궁에 빠져 장기화되면 프로파일러들이 해결사처럼 투입되었다는 보도가 비중있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살인자쯤 되면 평범한 사람들과 무언가 다른 정신적, 심리적 흠결을 가진 자일거라 생각한다. 폭력에 노출된 성장환경이나 결핍에 따른 분노가 공감능력의 결여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언론이 만들어 낸 그럴싸한 공식 몇가지만으로도 사람들은 이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범인을 자신들과 다른 종류의 존재로 규정하고 타자화함으로서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대중의 믿음은 '프로파일러'라는 생소한 직업군에 대한 신비화로 이어진다. '프로파일러'라는 직업(통상 경찰관이지만)은 수사의 과학화 이후, 심리학이 수사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이미 국내에도 보편화되었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영화나 미드 속의 이미지를 그들에게 투영한다.


  

대중에게 프로파일러는 그저 비범한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미궁에 빠진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존재다. 그러면서 사이코 패스들을 평범한 사람들과 분리해내는 (쪽집게처럼 집어내는) 무척 중요한 일을 '프로파일러'들이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중들의 믿음과는 달리 프로파일러들은 사이코패스 감별사가 아니다.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가 사건해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겠으나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프로파일러의 힘은 직관력이나 통찰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실증적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점도 대중의 믿음과 다르다.


범죄수사에서 의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인접 학문을 동원하는 것은 그만큼 증거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적법절차에 따라 획득한 증거만이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현재의 형사사법 환경은 수사의 과학화를 앞당겼다. 그런데 과학수사라는 것은 수사 장비의 과학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가는 전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프로파일러는 그 과정에 기여하는 조력자이지 결코 신비로운 존재이거나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그러니 과학수사를 지켜보는 대중들의 시선도 조금은 더 과학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요 며칠 언론이 또 소설을 쓰느라 바쁘다. 살인과 사체유기의 방법이 끔찍하다고 해서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할 수 없다. 또 뒤늦게 그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밝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항상 범인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프로파일러니 심리학자들까지 동원되어 판에 박힌 분석들을 쏟아내는 걸 보면 언론이 살인사건을 기묘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꺼리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언론이 만들어내는 사이코패스와 프로파일러의 기묘한 이야기꺼리를 따라가다보면 중세에 만연했던 '마녀사냥'과 뭐가 다른가 싶다. 그 때도 마녀라는 공포는 '마녀감별사'를 자처하는 권력자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 아닌가. 언론이라는 권력이 '프로파일러'를 신비화하고 그를 앞세워 '사이코패스'감별을 맡긴 채 재미를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 '사이코패스'를 타자화하고 과잉 소비하는 흥미위주의 기사는 그만 좀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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