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不ON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Sep 26. 2018

뒹굴거나 혹은 서성이거나

서울에서 보낸 어떤 연휴의 기록

아직 쓸수 있는 휴가가 20일이 넘게 남아있다. 석달 안에 휴가를 갈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예 못갈지도 모른다. 12월까지 빼곡하게 잡혀있는 일정들을 다 소화하고나서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탓에 이번 추석 연휴가 누구보다 간절했다. 한달 전부터 무얼할까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할 답을 내지 못했다. 어차피 미리 일정을 잡지 못해 여행은 불가한 상황. 뒹굴거나 서성이거나 아무튼 최대한 늘어져 지내보리라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익숙한 사무실을 떠나 모처럼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것도 유익한 시간일테니 말이다. 다행이 모로 눕든, 단정하게 천장을 바라보고 눕든 바닥과 완벽하게 밀착되는 굴곡 없는 신체는 뒹구는데 최적이다.


평소같으면 커피 한잔을 들고 헐레벌떡 사무실 책상에 막 앉을 아침 여덟시, 나는 실눈을 뜨고 시계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눈을 감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평소보다 두시간이나 더 뭉개는 중이지만, 세상에! 앞으로 몇 시간을 더 뭉갤 수 있다니. 커튼 틈새로 밀려드는 햇살이 볼을 간지르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다리 위로 기분좋은 한기가 느껴지는 아침.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공을 즐기며 바라보는 내 방 천정은 또 얼마나 낯선가. 천국에서 맞는 다섯번의 아침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루도 허투르게 보내지 않으리. 뒹굴고 뭉개고 서성이는데 최선을 다 해보리. 그렇게 굳은 다짐으로 연휴 앞에 누웠다. 그러니까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된 지난 5일간의 기록이다.  


사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뒹굴거나 서성이는데 더 없이 적합한 몇가지 계획은 있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한가한 서울의 거리를 거닐고, 미술 전시를 하나 감상하고, 니트나 가디건 같은 가을 옷을 장만하고 마지막으로 눈 밑에 난 점을 몇개 빼는게 그 소박한 계획의 전부였다.


하여 나에게 주어진 5일 내내 소설가 김민아와 윤지영 시인이 서로에게 주고 받은 편지글을 모아 낸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는 에세이와 '연을 쫒는 아이'로 유명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품고 다녔다. 거실에서 침실에서 카페에서 벤치에서 틈 날 때마다 기댈 곳만 있으면 몸을 니은자로 만들어 책을 읽었다.



1. 독서 -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


편지글을 엮은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안부를 물었다.'의 김민아 작가와는 거미줄 만큼 가는 인연이 있다. 얼마 전 일 때문에 만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냥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라는 겸손한 말에 호기심이 들었다. 편지글이라니.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나는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손편지를 생각했을까. 그것도 일년간 스웨덴에 살게 된 사람과 아일랜드 등을 여행하는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글인데 말이다. 서로를 '언니'와 '지영아'로 살갑게 부르는 두 사람은 객지에서 보낸 일년 동안 누구보다도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를 까맣게 잊고 지낸 나에게도 한 박스 분량의 편지뭉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설렜다. 어서 책을 읽고 창고 깊숙히 제습제와 함께 밀봉해 둔 편지를 꺼내봐야지. 그런 생각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책을 다 읽어갈수록 내 묵은 편지를 다시 꺼내볼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물론 시인과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글이라 그랬겠지만 이십여년 전 내 편지와는 너무나 차이나는 필력에 기가 죽은 탓이리. 사실 좌절감이 들었던 건 두 사람의 필력 뿐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감정과 기억들을 엮어내며 오롯이 상대에게 집중하는 두 사람의 우정이었다. 나에겐 그럴만한 친구 한명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허전했고 두 작가의 우정이 부러웠다. 북유럽의 긴긴 밤, 낮은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한 채 밤을 새워 책을 읽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딱 좋을 책.

    


2. 독서 - '그리고 산이 울렸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를 중간 쯤 읽다가 영화 '연을 쫒는 아이'를 받아 보았다. 고향과 가족을 잃고 평생 타국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연을 쫒는 아이'의 아미르와 '그리고 산이 울렸다'의 압둘라는 단순한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어쩌면 작가의 기억이 투영된 실존적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세이니의 창작 작업은 상처입은 자신의 유년을 보듬는 행위가 아닐까. 뭐 그런...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이지만 짜임새 있는 이야기의 힘이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서로 다른 완성된 아홉 편의 글이 얽히고 포개지며 이어진다. 처음엔 등장인물이 많아 몇번을 확인하며 읽어야 했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었다. 평생 근원을 알수 없는 상실감과 후회에 휩싸여 살아간 두 주인공 남매의 굴곡진 삶을 통해 작가는 비극으로 점철된 아프카니스탄의 속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가 꼭 비극이기만 할까. 오히려 이 소설은 존재의 근원인 가족간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이별 후에 관계를 복원해나가는 치유의 과정에 더 집중한다. 욕심과 우연으로 벌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결국 망가진 관계를 복원해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야 말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된 인간의 모습 아닐까.


3. 전시회 - '니키 드 생팔 마즈다 컬렉션 展'


책은 거들 뿐. 원래의 목적은 최대한 뒹굴고 서성대기였다는 사실. 등어리가 뻑뻑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던 월요일 나는 몸을 일으켜 서울 한복판으로 나왔다. 하늘은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했고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도 적당했다.   


딱히 어떤 전시를 봐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차가 가는 방향대로 음악을 들으며 직진했을 뿐인데 한가할 줄만 알았던 고속도로가 양재 IC부근에서 막히기 시작했고 도심을 통과하기로 마음먹고 빠져나온 길에 한가람 미술관이 눈에 띠었을 뿐이다. 샤갈전은 몇번 봤던 터라 자연스럽게 '니키 드 생팔 마즈다 컬렉션 展'을 택했다.


'니키 드 생팔'은 프랑스 화가다. 유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가출과 조혼으로 이어진 어두운 과거로 인해 그녀의 초창기 작품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조롱으로 얼룩져 있다. 석고 뭉치 위에 물감을 달아놓고 총을 쏴 흘러내리는 물감으로 캔버스를 채우는, 이른 바 '슈팅(shooting) 페인팅'이라 불리는 기법으로 작품 제작과정을 공개한 그녀는 자유분방한 작가로 알려지지만 내면의 상처를 완전히 떨칠수는 없었을 터.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원초적 발랄함을 '나나(nana)라는 캐릭터에 투영하며 한 층 더 성숙한 작가로 성장한다. 그의 연작에 등장하는 캐릭터 '나나'는 자유분방함과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여성을 강조하며 관념적 미의식을 깨뜨린다.

<슈팅 페인팅 기법으로 만든 그녀의 작품들 >
<사격을 하는 니키 드 생팔. 복수심을 예술로 승화시킨 걸까 >

전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니키 드 생팔의 작품들은 보다 생생해지고 다양해진다. 그녀가 사랑했고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녀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기 때문. 조각가 장 팅겔리, 그녀의 친구이자 컬렉터였던 요코 마즈다 시즈예 등과 주고 받은 그녀의 그림편지나 타로를 주제로 한 타로 궁전 등은 아기자기 하면서도 재기롭고 화려한 그녀만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준다.     


마침 근원적인 부재와 상실감을 치유해가는 소설을 읽던 터라 그녀의 굴곡진 삶이 더 감동적으로 와 닿았다. 두 시간 정도 봐도 무언가 다 못보고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까웠던 전시.   

그녀의 연작에서 두드러지는 캐릭터 nana. 재기롭고 발랄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있는 그녀의 아픔을 읽는 것이 감상 포인트


4. 산책 - 북촌, 한강


명절 연휴의 서울은 살만한 도시다. 사람도 평소보다 훨씬 적었고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었다. 하늘만 제대로 받쳐준다면 솔직히 서울의 풍경이 해외 어느 도시 못지 않다는 걸 이번 연휴에 알게 되었다. 와중에 음식점과 카페는 평소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곳이 정상 영업 중이었다. 연휴 중 산책은 가급적 일찍 시작해서 빨리 귀가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인적이 드문 서울 거리를 즐겨보고 싶은 생각이었달까.

마침 바쁜 아내와도 시간이 맞아 모처럼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북촌은 고향같은 동네라 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붐벼도 나름의 정취가 있는 곳이다. 외국인들의 호기심 때문에 예전의 정취를 오롯이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적잖이 실망스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어린 시절의 향수를 즐기기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끔 여행객의 시선으로 천천히 거리를 걸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도 북촌과 광화문, 을지로 일대를 걸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부러 이방인의 심정이 되어 후미진 골목을 걸어본다.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이제 한시간의 여유만 생겨도 금세 여행객으로 빙의할 수 있다.


연휴의 한강도 지금까지 내가 가본 한강 중 최고였다. 적당히 모여든 사람들. 풍족한 하늘과 바람. 그늘진 벤치에서 커피 한잔 홀짝이며 책을 보는 그 순간 만큼은 어느 여행지에서의 힐링 못지 않았다.

<한남대교 위에서 본 한강. 이토록 아름다운.>


5. 쇼핑과 피부관리.


그리고 건대 근처에서 가디건 한벌과 코트 한벌을 득템했다. 물론 점도 뺐고.


어이없는 종결이지만 어쨌거나 이로써 나의 5일이 모두 지나갔다.


남김없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