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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01. 2018

보헤미안랩소디, 지극히 사적인 후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영화를 보자마자 멜론(음악어플)에 들어가보니 차트 1위곡이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다. 세상에! 70년대의 감동이 아직까지 유효하다니. 영화의 개봉을 기다린게 나 뿐이 아니었구나.


올해 두번째 휴가, 그것도 딱 하루를 이 영화의 개봉일을 위해 썼다. 그만큼 기다렸던 영화다. 딱히 <퀸>이나 프레디머큐리의 열혈팬은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이 청계천 레코드가게에서 빽판으로 유통되던 시절을 기억하는 자의 향수라고 할까.


모든 전기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역시 그의 삶과 죽음에 관한 서사다.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에 태어나 45세가 되던 1991년에 죽었다. 그가 죽던 1991년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된 해였고 우리나라와 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해였으며 바비브라운의 음악에 맞춰 토끼춤을 추던 청년들과 정권퇴진운동을 이어가던 청년들이 적당히 공존하던, 세기말적이고 또 그만큼 음울했던 그런 해였다. 하필 그 해에 대학을 입학했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수선한 이십대를 보내던 중 그의 부고를 들었다.


어울리는 죽음인걸.



콧수염에 타이트한 러닝셔츠 차림으로 무대를 휘젓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조금도 놀라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의 충격적인 사인이 죽기 하루전에 보도되었다지만, 기억으로는 그보다 몇년 더 일찍 세상을 떠난 유재하나 기형도의 죽음만큼 안타깝거나 충격적이지 않았던것 같다. 레코드 표지나 이런저런 음악잡지를 통해야만 볼 수 있었던 그는 어차피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대상이었고, 그런 그가 천수를 누리고 노환으로 죽었다면 오히려 더 놀랐을지 모른다. 어쩐지 좀 그래보였어. 당시 열혈팬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은 딱 그 정도였다. 그의 느끼한 얼굴과 도착적인 비주얼은 게이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꽤 오래 내게 남았었다. (게이에 대한 편견을 깬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그럼에도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오래도록 즐겨듣던 곡이다. 카스트라토를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성악발성과 묵직한 드럼소리, 폭발하는 기타 연주,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극적인 가사가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주는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을 전율케 하는 힘이 있었다.


영화 역시 프레디머큐리의 천재성을 보여주는데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정규과정에서 음악을 배우지 않았던 그가 멜로디를 반복해서 떠올리고 록음악 베이스에 오페라를 끌어들이며 전체를 완성해가는 실험적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밀도있게 그려낸다.

 

영화를 본 여러 사람들이 스토리가 너무 평면적이라고 아쉬워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세세하게 몰랐던 나 같은 음악 문외한에게는 설득력 있는 인물 묘사가 좋았다. 어차피 전기 영화는 한 사람의 삶을 몇가지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 해석의 맥락에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작법 아닐까. 나는 이 영화에서 주변부의 삶을 자처하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유분방했던 예술가를 보았고, 죽음에 직면한 한 인간의 진지함에 설득당했다.


죽음을 앞두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온 생을 다해 기성의 질서에 도전했지만, 그 역시 죽음 앞에서는 가련한 한 사람에 불과했을텐데 시대가 시대인지라 자신에게 쏟아지는 건 호기심과 도덕적 훈계 뿐이었을 터. 그는 일찌감치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며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지은 것 아닐까. 가사에서 그가 마주했던 두려움과 절망이 읽힌다.


My time has come / Sends shivers down my spine / Body`s aching all the time / Good bye, everybody I`ve got to go /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설령 영화가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면, 그건 그의 화려했던 삶의 궤적보다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너무 짧게 다루었기 때문 아닐까. 그에게 바치는 120분간의 러닝타임이 조금 더 풍성했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평점이 높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그의 음악 만으로도 풍성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태생부터 주류가 아니었으며 성적 지향마저 남달랐던 예술가에게 7-80년대는 엄혹한 세월이었을테지. 적어도 이삼십년쯤은 훌쩍 앞서갔던 아티스트란 말야. 프레디는. 그러니까 대미를 장식한 Live Aid concert의 압도적인 무대 재현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였다고. 나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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