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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즙

by 무너


부추 즙을 마시려 합니다. 뭐 달리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삼천오백원 주고 사온 부추 한단으로 부추전과 부추무침을 만들고도 남아 즙을 한잔 만들었을 뿐입니다. 부추 즙 한잔 마신다고 해서 니코틴을 비롯한 잔류 노폐물이 제거되고 식도부터 위를 거쳐 소장 대장에 이르기까지 물광 낸듯 반딱반딱 거릴리가 있겠습니까. 하긴 어디 보여줄 것도 아닌데, 기껏해야 이삼년에 한번 의사에게나 한번 보여줄까 말까한 식도나 위장에 광이 난들 또 뭐하겠습니까. 그저 남은 부추를 버리기 아까웠을 뿐입니다.


부추가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어차피 혈액은 순환하게 되어있습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는 이상 혈액이 제자리걸음을 할 이유는 없을테고, 고작 부추 즙 한잔 원샷했다고 갑자기 혈액이 이배속으로 돌고 그러지도 않습니다. 전 그런 속설을 다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그냥 부추를 버리기 아까운 마음인거죠.


부추즙을 잔에 따라놓고 보니 어떤 중년의 의사가 정력에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푸라기조차 제대로 잡지 못할 것 같이 마르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그 중년의사는 입에 거품을 물고 부추가 정력에 좋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부추보다는 당장 링거를 한대 맞는게 그 의사에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 뿐만이 아니었을테지만, 의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부추즙 홍보를 이어갔습니다. 흰 가운만 입지 않았더라면 부추아저씨 선발대회 파이널 무대에서 금상을 타기 위해 최종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부추 아저씨는 나름 부추 판촉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나신 분이었고, 저는 그 괴상한 인터뷰의 잔상을 잠재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 기어이 부추즙을 만들어 낸 알뜰한 살림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부추즙은 단지 부추를 버리기 아까워서 억지로 마시는 부추즙일 뿐입니다. 혈액순환이랄까 궁극적으로 정력이랄까 뭐 하여튼 단 한 방울의 사심도 들어있지 않은 그런 순수한 계통의 부추즙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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