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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Nov 11. 2020

피씨방과 평화주의자

피씨방에서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사방에 게임하는 애들이 쌍욕을 내뱉는 바람에 주간지 기사를 읽기에도 적절치 않다. 이럴  그저 무언가에 빠져드는게 상책인데 달리 빠져들만한 꺼리가 없다. 그래서 워드패드 열어놓고 자판을 두드린다.


 집에서 하지 그러냐고 궁금해할  같아서 말해두는데 집에는 인터넷이 안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들 손에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있고, 딱히 컴퓨터를  일도 없는데 인터넷 요금을 따박따박 내는  불합리한 소비라는 의견을 가진 분과 같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보면 집에서 컴퓨터를  일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주 내로 차량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 하라는 명령을 받은 지금 같은 때를 빼곤 말이다.


불편하지만 그게 평화를 위한 일이라는  나는  알고 있다. 스마트폰 어플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냐는 그럴듯한 제안도 유용한 정보가 아니긴 마찬가지다.  분으로 말하자면 차량의 내비가 보시기에  편하다는   마디로 모든 사안을 정리할  아는 분이다.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라 옆자리 고딩이 게임을 하다말고 "야이 개새끼야~!"라고 소리를 지를때도 쳐다보지 않는다. (무서워서 그러는  절대 아니다.) 저들끼리의 다정한 호칭쯤 되나보다 생각하기로 한다. 70% 남은 업데이트는 무료하고 글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환경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집구석에서 게임을 하지 않는것이냐는 나의 불만이지만, 불만을 드러내지 않은  웃음띤 얼굴로(무서워서 그러는  절대 아니다)  물어보면 고딩들도 나름 이유있는 항변을 하겠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예요 아저씨. 집에 계신 분들은 제가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인생은 승부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당최 제가 게임하는 꼴을 못보시네요.

 그렇구나. 그러고보면 피씨방은 너나 나처럼 평화를 위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완충지대 같은 곳이었구나. 설령 쌍욕이 넘쳐나도,  곳은 현실 세계의 갈등과 불화 피하기 위해 모여든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의 공간이구나. 마치 지구에 쳐들어온 외계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작전을 모의하는 영웅군단처럼 저마다 검은 롱패딩으로 중무장한채  자리에 앉아 단지 소리만 질러서 소통하는 이유도 이제 알것 같구나.

피씨방에 들어온지 두시간이  되어가는데 내비게이션 업그레이드는 35% 진행률에서 정체되어 있다. 회원권이 없는 사람은 사십분에 천원을 받는다고 주인 아저씨 같이 보이는 알바생이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사십분이면   알고 천원만 결제했는데 벌써 몇번을 연장하는건지. 내비게이션 하나 업그레이드 하는게 이렇게 힘든데 대체 평화를 이룬다는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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