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달라는 안내멘트는 어법에 맞지 않아 폐기되었다. 대신 안전선 안쪽으로 물러서 달라는 새로운 안내멘트가 역사에 울려퍼진지 오래다. 안전선은 위험지역과 안전지역을 나누는 경계다. 경계의 밖에서 열차가 내달리고 경계의 안쪽에선 그 열차에 올라타기 치열한 자리다툼이 벌어진다. 안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안이든 밖이든 물러서야 했지만 살기 위해서 또 마냥 물러서 있을수만도 없었다.
물러나시라구요.
안내멘트가 울려퍼지건 말건 사람들은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밀려오는 위험과의 경계선 주변을 서성인다. 안전선이 그들의 생존을 보장해 줄지언정 밥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번호표를 뽑아든 사람들은 그 위험에 올라타야 한다. 아귀다툼을 하듯 자리다툼을 해도 할수 없다.
열차는 안팎이 다르지 않다. 달리는 열차가 위험한 만큼 내부에도 위험이 가득하다. 도저히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공간에서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유튜브를 시청하고 토막잠을 자고 담소를 나눈다. 이 놀라운 불감증은 대체 무언가. 공감대가 없는 사회의 단면일까.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 아닐까.
둘러보면 도처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다. 누가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을지 아무도 모르는 삶을 산다. 열차는 지금 이토록 살벌한 2020년을 지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