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버스 단상
대문사진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62497 @김동환
버스 안이 많이 덥다. 정거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내 옆을 지나치는 버스를 놓칠세라 전력질주를 했던 탓도 있지만 가까스로 올라탄 후 한참 숨을 고르고 나서도 실내는 한증막 같이 덥게 느껴졌다. 퇴근시간, 그것도 서울 중심부에서 경기남부권으로 향하는 금요일 저녁의 광역버스가 쾌적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시내 중심부에서 한남대교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올라타는 그 짧은 거리를 가는 동안 핑크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전곡을 거의 다 들을 정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뒤 좌석간의 간격이 고작 60센티미터 쯤 될까. 닭장같은 공간에서 생면부지의 타인과 한쪽 어깨나 넓적다리를 맞대고 있노라면, 휴먼 버블이라던가? 아무튼 인간이라는 개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개인 공간의 면적이 얼마였는지 따위를 떠올리는 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저 빈자리가 하나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운이 좋아 자리를 골라 앉을 때도 사람을 가리게 된다. 낯선 타인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면 최상이다. 옆에 사람이 있어도 어깨가 좁고 체구가 작은 사람(남녀 구분없다)이라면 나쁘지 않다. 반면, 덩치가 크고 다리를 벌리고 앉은 사람은 기피 대상 1호다. 마스크 밖으로 내민 코를 벌름거리며 전화통화에 열을 올리는 중년 남자라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옆자리 승객에게 닿지 않기 위헤 최대한 몸을 구겨 넣기도 하는데 이럴때마다 나 스스로 테트리스의 각진 도형 중 하나가 된 기분이다. 왕복 오천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매일 이용하는 교통수단인데 대우는 주문 한번에 하나씩만 배송한다는 배달통 안의 햄버거만도 못하다니.
광역버스 내부 환경은 그날의 날씨나 승객의 수, 차량 내부의 밀도나 습도와 같은 물리화학적 조건에 따라 결정될 것 같지만, 사실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최대한 많은 승객을 최소한의 배차만으로 짐짝처럼 실어 나르는 것이 버스회사의 목표다 보니 서울에 직장을 두고 경기권 베드타운에 사는 서민들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동동거리고 미어터지는 버스 문에 매달려 한강을 건너는 일이 건조한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다.
코로나가 습격한 후로 버스는 체념의 공간이 되었다. 어쨌거나 생존을 위해 매일 일터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 안에 한시간 넘게 머물면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 다닥다닥 붙고 매달리고 흔들리며 고통을 견뎌내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기에 그마저도 견뎌내는 것 같다. 어쩌겠는가. 생존의 공간은 애초에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공간인걸. 최대한 자신의 몸을 구기고 접어 타인이라는 이물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차선의 방법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경기도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견뎠고 또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