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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an 01. 2021

해돋이의 기억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돌아보는 새해 첫날


새벽 산행을 했다. 산행이라고 적고보니 많이 부족해서 산책이라고 정정해야겠다. 새벽 산책은 남산 전망대에 한참 못미쳐 끝이났다.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새벽길을 나선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통제라인 앞에서 삼삼오오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왜 하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이 때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늘 새벽 세시가 넘어야 겨우 잠이 들고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아들녀석이 무슨일인지 흔쾌히 동행을 하겠단다. 모처럼 비밀모의하듯 어두컴컴한 시간에 집을 나서면서도 옛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설렜다. 녀석이 어릴땐 둘이 참 많이도 다녔었다. <지하철 종점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말마다 한 라인의 끝과 끝을 오가며 구경을 다녔던 적도 있었다.


남산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남한산성이 코 앞이었기 때문. 그러나 새벽 다섯시경 남한산성 주차장에 당도했을 때 우린 예상치 못한 입산금지 현수막에 걸음을 돌려야했다.


어차피 나선 길, 아빠가 잘 아는 남산길에서도 일출을 볼수 있지 않을까?

해는 우리집 이층 테라스에서도 얼마든지 볼수 있잖아?

그래도 기왕 나선길인데 가보자.


그렇게 고집을 피워 남산 산책을 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전망대까지 갈 생각이 아니었던 나는 오히려 통제 안내를 해주는 공무원들이 반가웠다. 확실히 넘지 않아야 할 선을 그어주고 알려주는 시스템의 편리함이란. 마스크 너머로 김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 무리를 피해 한적한 장소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동쪽 하늘을 향해 섰다. 나뭇가지에 시야가 가렸지만 그럭저럭 해돋이를 보기에 부족하진 않았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부지런해?


난생 처음으로 새벽에 산을 올라와본다는 아들놈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아비되는 사람도 이 시간에 집을 나선다 이놈아. 혀를 차며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새해 첫날이었으므로 말을 아꼈다. 잔소리를 싫어하는 녀석에게 해돋이를 보여주면서 힘을 불어넣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할 말을 아껴야 했다.


해 뜨면 소원이라도 빌던가.


연신 사진을 찍으며 눈을 떼지 못하는 녀석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더니 나는 그런거 안믿어. 딱 잘라버린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나 역시 해돋이의 장관에 빠져 사진만 눌러댔다. 사실 오래 전 아들녀석과 산행을 계획했던 건 이런 식은 아니었다. 조금 멀더라도 바다를 가거나 높은 산에 오르고 싶었다. 가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녀석의 미래에 대해 조언이라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


늘 자기 용돈은 벌어 쓰는 편이지만, 영하 십도 이하로 내려가던 날 굳이 건설노가다 아르바이트를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못해 놔뒀더니 며칠을 다녀와서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시작하기에 돈이 모자르다며 한숨을 쉬는 녀석이 내 아들이다. 손을 벌릴때마다 얼마간 보태주기도 하지만 내가 주는 건 그야말로 용돈에 불과한걸까. 나름 목돈이 필요한 구상을 시작하면서 녀석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어려운데 아르바이트 자리가 나겠어? 일단 집에서 책도 보고 니 나름 할 일들을 구상해보는 건 어때?


녀석은 내 조언에 늘 고개를 주억이며 잘 듣는 편이지만 행동은 자기 고집대로 한다. 해보고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나면 그제서야 멋적게 씩 웃으며 시인을 한다. 후회하거나 그런 성격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뻔히 결과를 예상하는 내가 녀석을 그냥 지켜보는 일이 쉽지는 않다. 풀이죽어 며칠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영화보고 음악만 듣던 녀석의 동행이 반가웠던 이유다.


미래가 걱정이 많이 돼? 싱겁게 일출을 감상하고 내려오는 길에 물었다.


그럼. 걱정이 안될수가 있겠어. 내 인생인데. 녀석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걱정한다고 되지 않더라. 걱정할 시간에 뭐라도 할수 있는걸 해야 그 다음단계로 갈수 있어. 어차피 부딪혀야 할 거면 과감하게 해봐. 아직 만 스물두살인데.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설수 있는 나이야.


내 말에 수긍을 했던건지 녀석은 더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집을 나설때 보다는표정이 풀려있었다.


일출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은건 사실 아버지 덕분이었다. 언젠가 승진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직장에서 가깝던 부모님댁에 한달 머물며 출퇴근을 할때의 일이었다. 그 날도 신년 초하루였다. 베란다에서 일출을 보던 아버지께서 큰 소리로 나를 부르길래 새벽공부를 하다말고 나가보니 저기 해를 봐라. 올해 합격이다. 합격. 하시는게 아닌가. 울컥 솟아오르는 불덩어리가 가슴에 확 꽂히는 기분이었다. 과연 그 해 나는 운좋게 합격을 했다. 코로나 블루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가슴에 그 때 나를 파고들던 그 불덩어리를 전해주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침대로 기어드는 녀석이 불덩어리를 가슴에 간직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중에 기억은 하겠지. 어려울 때, 용기가 필요할때, 자기 옆에 아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확실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알려주면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무척 노력하며 살아온 나와 달리, 녀석은 자기의 선은 자신이 만들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지금 당장 그 선이 뚜렷하지 않은걸 걱정하는 건 날 위한 걱정일까, 녀석을 위한 걱정일까. 방황하던 내 스무살 무렵, 아버지가 날 어떻게 키우셨는지 자꾸 되돌아보는 새해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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