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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Aug 20. 2021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후기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민과 경험, 판단으로 가득한 기록을 통해  질문의 답을 구할  있을지,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책은 단지 생각을 돕기 위해 필요한  아닐까. 어쩌면 책을 통해 나의 질문을 조금  구체화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정도가 책에 대한 기대의 전부다. 어차피 삶이란 끝없이 답을 구하는 질문의 과정 아닌가.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인간의 뇌 용량에는 한계가 있고 나의 뇌가 특별히 그 한계를 벗어날 가능성도 없다. 읽고 까먹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억의 그물망에 걸러진 지식이라는 것들이 사는데 그리 유용하지도 않았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이후에도 몇 권의 유사한 책들을 접했지만 거기서 건져 올린 몇 가지 얄팍한 지식이 유용했을 리 없다.


저자들은 미술을 규정하려고 했다. 미술은 관념이 아니라 현상이고, 활동인데 미술에 대한 설명은 추상적이고 현학적이었다. 어떤 책은 역사책 같았고 또 다른 책은 위인전 같았다. 미술에 대한 나의 관심이 끝내 가질 수 없는 한정판 명품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 무렵, 운 좋게 만난 책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서양 미술의 변화 과정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한 역사적 사실 또는 유파별 특징과 주요 작가의 작품만을 나열한 책과는 다르다. 미술의 장대한 역사를 펼쳐 보여주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 머물며 특정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시대의 특징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칼라 도판이 선명해서 그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통 책과는 다르게 빳빳한 지질 때문에 두껍고 무게감이 있다.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없다는 점만 빼면 미술 입문서로 넘칠 만큼 좋았다.


- 관념을 기호화한 미술이 있었고, 현상을 재현하는 미술이 있었다-


두 흐름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물론 각각의 흐름은 시기에 따라 다른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며 변화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발전이라고 하겠지만 곰브리치는 미술사를 발전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다른 면에서 잃는 것이 있다는 말도 된다. 엄밀한 균형과 비례를 추구하면 인물의 생동감이 줄어들고, 서사에 집착하면 회화의 매력이 떨어진다.


곰브리치는 미술이 과학과 “전혀 다른 것”이며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집트 미술보다 그리스 미술이 더 나은 미술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15세기 북유럽에서 유화가 탄생했고 그로 인해 보다 사실적인 재현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술의 진보일 뿐이고 화가(혹은 장인)에게 요구되던 것들이 달랐을 뿐이다.


이집트 미술과 그리스 미술로 대표되는 두 가지 흐름은 후대에 명멸하는 수많은 유파와 흐름의 기원이 되었다. 관념의 미술과 재현의 미술은 변증법적 변화를 거치며 또 다른 시대와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나갔다. 고딕이니 바로크니 하는 양식의 명칭은 후대의 비평가들이 전대의 양식을 비판하고 조롱했던 증거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대의 표현기법과 양식이 수십, 수백 년 후의 미술에서 다시 부활하는 장면을 우리는 기억한다.


정면성의 원리에 충실했던 이집트 미술과 파편화된 시각으로 인물을 재구성해낸 피카소의 그림은 2차원 평면에 보다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데 효과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중세 복음서의 한 면에 그려진 마테오의 초상에서 보여지는 격정적인 감정의 표출은 먼 훗날 마티스의 야수적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아프리카 부족의 미술은 유럽의 현대 미술가의 그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게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겹겹이 쌓아올려진 기술과 표현양식은 서로 충돌하고 흡수하며 미술이라는 문화적 생산활동의 폭을 점차 넓혀갔다.



- "미술이 아니라 미술가들이 존재했을 뿐" -


곰브리치의 주장이다. 미술의 역사가 아니라 미술가의 역사라고 말한다. 어떤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인정받는 절대화된 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당대의 요구와 조건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남겨진 결과물을 ‘미술’이라는 큰 그릇에 담을 수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로 읽었다.


고대는 관념의 미술이 지배하던 시기다. 정교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이 원하는 방식에 따라 당대의 신앙과 세계관을 표현해내는데 가장 적합한 방식을 개발했다. 기독교 유일신만이 존재했던 중세의 천 년도 관념의 미술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교리를 설파하고 영성을 드러내는 방법이 중요했지 그들에게 사실의 정확한 재현이나 인간의 감정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반면 그리스 로마시대는 신의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형상을 재현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시기다. 이성을 중요시하고 균형과 비례를 중시했던 그리스·로마 시대의 미술은 훗날 르네상스의 토대가 되었고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등으로 진화하면서 재현을 중시하는 서양미술의 주류를 만들어냈다.


이집트 미술이나 피카소의 그림이 초등학생의 드로잉처럼 미숙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재현중심의 서양미술에 익숙해진 탓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얼마나 잘 그렸는지, 얼마나 똑같이 그렸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교양으로써의 미술도 기법과 화풍, 수많은 저자의 이름과 작품명을 외우고 분류하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미술은 일상생활과 괴리되었고 감상은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한 상품으로 소비된다.


우리가 미술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것은 작품의 가격이 얼마인지, 작가의 이력이 어떤지,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인지, 어떤 미술사조에 속하는 것인지 따위가 아니라 작품을 통해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말해보는 것이다. 그게 어떤 절대적 기준을 가진(것으로 오해하는) 미술이라는 허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한 시대의 인간(미술가들)과 교류하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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