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의 목가> 후기
미국이라는 거대한 오해
-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의 목가> 후기
학교는 물론 뉴어크 전 지역을 대표하는 잘생긴 만능 스포츠맨이었고 해병대를 전역한 후에는 아버지의 장갑 사업을 물려받아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뉴저지 출신 미인대회 우승자인 미녀와 결혼한 남자가 있다. 유태계 미국인 시모어 어빙 레보브. 애칭 스위드로 불리는 이 남자의 인생에는 그 어떤 불행도 끼어들 것 같지 않았다.
소설의 도입부는 주커먼이라는 인물이 이끌어간다. 작가인 주커먼은 어린 시절 친구의 형이자 우상이었던 스위드의 편지를 받고 그를 만나게 된다. 주커먼은 스위드가 살아온 내밀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 스토리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얼마 후 주커먼은 우연히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제리에게서 스위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스위드의 동생 제리는 주커먼에게 그의 내밀한 인생 역정을 들려준다.
스위드와 그의 아내 던 사이에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는 딸 메리가 있었다. 부부는 딸의 장애를 교정하기 위해 심리치료도 받아보지만 별 진척이 없었다. 반항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한 메리는 당시 한창이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심취한다. 스위드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메리를 달래기도 하고 언쟁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우체국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그 배후로 스위드의 딸 메리가 지목된다. 용의자로 몰린 메리는 행적을 감추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소설 <미국의 목가>는 제목과는 달리 무척 격정적이고 비판적인 소설이다. 주인공인 스위드는 <미국의 목가>로 상징되는 평온하고 자유로운 미국의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왔지만, 딸 메리는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의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에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스위드와 메리의 갈등은 사실상 미국의 가치를 둘러싼 갈등을 상징한다.
스위드는 메리와 리타 코언 등 메리 주변의 급진적인 인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나 아버지 세대가 이루어낸 성공적인 이주의 역사는 미국이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과정이었고, 스위드에게 미국은 자신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자긍심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메리와 리타코언에게 스위드는 미국의 추악한 시스템에 기대어 배를 불려온 범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셈이다.
소설 <미국의 목가>는 세계대전 승리 이후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비대해졌던, 미국이라는 성찰 없는 초강대국의 이면을 스위드라는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보여준다. 스위드가 2차대전의 피해자이자 이주민이라는 비극적 포지션을 가지고도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이 전쟁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의 번영기에 얹혀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수렁에 빠져드는 당시 미국의 모습은 스위드의 딸 메리가 겪는 추락과 오버랩 된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필립 로스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던 미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다. <미국의 목가>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과 함께 미국의 현대사가 사회와 구성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지 파헤쳐온 그의 미국 3부작 중 하나다.
베트남 파병,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이 6-70년대 미국의 현대사를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우리에겐 잘사는 나라, 민주주의 모범국가, 천조국으로만 알았던 미국의 이면은 무엇이었을까.
“사랑을 받고 승리를 거둔 모범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자. 위대한 스위드 레보브, 미국 국가대표 자본가 범죄자”
메리가 자신의 아버지 스위드를 향해 외친 이 한마디가 결국 미국의 모습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