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소식을 알리러 몇년 만에 찾아온 직원을 동네에서 제일 북적거리는 돈까스집에 데려갔다. 꽤 오랜 웨이팅 끝에 자리를 잡았다. 2인 좌석이라 그런지 옆자리와 가까워 테이블이 거의 붙어있는 지경이었는데, 청첩장을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길하는 직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 몇번을 되물어야했다. 옛 상사 앞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탓도 있었지만, 옆자리에 N사 출입증을 패용한, 목소리가 우렁찬 남자의 말이 직원의 말과 계속 섞였기 때문이다.
새치가 많은 곱슬머리에 뿔테안경을 쓰고 개복치를 닮은 남자는 두 여직원과 동행중이었다. 무슨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지 남자는 대뜸 “알렉산드르 6세라고 아주 유명한 16세기 교황이 있어.”라고 운을 떼었다. “아주 유명한”이라는 수식어와 “16세기 교황”이 대체 어울리는 말인지 생각을 하는 중에도 남자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동행한 여성들은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잽싸게 눈을 내리깔며 알렉산드르 6세를 검색하는 척 했지만 사실 돈까스가 빨리나와 이 상황을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그가 돈까스를 먹느라 잠시라도 접시에 고개를 처박아 주길 기원했지만, 돈까스가 나온 후에는 오히려 흡입과 발설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두배쯤 바빠진 그의 두껍고 경이로운 입을 곁눈질로 봐야만 했다.
늦게 먹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바람에 그의 장광설을 다 듣진 못했다. 그러나 식당에서 탈출하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직원조차 “대강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식민지 영토분쟁을 그 유명한 교황이 정리해주는 과정에서 브라질만 포르투칼의 영토가 되었다는 이야기 아니었어요?” 라고 되물었을 정도니 그의 강의가 전달력만큼은 훌륭했던 것으로 인정할수 밖에. 물론 짧게 들었어도 명동 한복판에서 예수천국불신지옥을 외치는 광신도의 주장을 대강 기억하는 건 꼭 내용이나 전달자의 태도가 훌륭해서만은 아니라는 점에 모두들 동의할거라 생각한다.
직원과 헤어진후 귀사하는 길에 나는 끊임없이 질문들을 떠올려본다. 왜 나이 지긋하고 한자리씩 하는 남자들은 말이 많은지, 왜 설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왜 여자들 앞에선 더더욱 달변가가 되는지, 왜 앞자리의 동석자가 자신의 말을 듣고싶지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지, 왜 묻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걸 길게 이야기 하는건지, 왜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고 지 혼자 웃는건지, 왜 웃을때는 모두들 광개토대왕처럼 껄껄 웃는건지. 왜 밥먹을때 N사 출입증은 차고 나온건지. 왜 여자들은 개복치를 버리고 달아나지 않은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