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동과 함께 사라져버린 것들
행성동은 낮에도 어두웠다. 언덕 위에 집들이 서로 기대듯 붙어 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려다 포기하는 그런 골목들. 폐가의 깨진 창문 틈으로 바람이 스치면 벽지대신 붙여놓았던 오래된 신문지가 바스락거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조차 메아리치다 지쳐버렸다. 해가 지면 더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 불빛 아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살짝 가빠지는 그런 동네였다. 김모씨는 그 어둠 속에서 살았다.
창밖을 봐도 별다른 풍경이 없었다. 그냥 더 어두운 집들, 더 낡은 지붕들, 그리고 가끔씩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플라스틱 의자 하나. 통장 잔고는 늘 두 자릿수 언저리에서 맴돌았고, 그마저도 이번 달 월세가 빠지면 곧 한 자릿수가 될 터였다. 그러던 어느 새벽, 집 앞에 붉은 티코가 서 있었다.
엔진이 아직 따뜻한 듯 희미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 안에는 종이 한 장. 글씨는 바래 있었지만 읽을 수 있었다. 빚을 차로 갚는다는 내용뿐. 그 외 아무 말도 없었다. 마크였다. 마크는 두달전 김모를 찾아와 200만원을 빌려간 사내다. 김모가 왜 없는 형편에 마크에게 돈을 빌려줘야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김모의 표정에서 그저 짐작만 할뿐. 김모는 웃지도 않았다. 그냥 가슴 한구석이 텅 비는 느낌이었겠지. 200만 원. 그 돈이 지금 이 낡은 차 한 대로 바뀌어 버린 셈이었다. 그는 차 문을 열고 앉아보았다. 시트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계기판 유리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려면 급경사를 내려가야했다.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비 오면 물이 고이고 눈 오면 얼어붙는 길. 낮에도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한참을 기침하다 겨우 숨을 쉬기 시작했다. 기어를 넣고 브레이크를 아주 천천히 풀었다.
차가 움직였다.
그러나 내려가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다.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아니라, 차체 전체가 덜덜 떠는 소리였다. 엔진은 점점 높은 톤으로 울부짖었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빨라지는 듯했다. 언덕의 경사가 차를 잡아당기는 힘보다 세게 느껴졌다. 핸들이 손 안에서 미끄러질 듯 흔들렸다. 김모는 이를 악물고 기어를 후진으로 바꿨다. 틀틀틀. 액셀을 밟았다. 티코는 컥컥거리며 간신히 멈췄다. 다시 올라와서 시동을 껐다. 숨이 거칠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핸들이 미끄러웠다. 김모는 차에서 내려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불빛들이 멀고 희미했다.
그렇게 김모씨가 경사진 언덕위에 세워둔 후로 티코는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십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지난 어느 날이었을거다. 행성동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거업체의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집들이 하나씩 허물어졌다. 먼지가 하늘을 덮었고, 폐가의 벽돌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그 바람에 실려 먼지가 언덕 위까지 올라왔다. 인부들도 먼지와함께 올라왔다. 그들이 붉은 티코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녹은 거의 슬지 않았지만, 타이어는 바람이 빠져 납작해져 있었고, 앞 유리에는 찌든때와 새똥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대시보드 위엔 바랜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글씨는 거의 지워져 있었지만, 누군가는 글씨를 읽어냈다. 돈대신 차. 인부들은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불도저 소리가 가까워졌고, 먼지가 다시 피어올랐다. 티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언덕 위, 경사진 길 한가운데. 세상이 무너져 내려가는데도, 그 차만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먼지가 차 지붕을 스치고 지나갔다. 멀리서 포클레인의 엔진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아주 조용히, 행성동은 사라져갔다. 붉은 티코 한 대와 함께.
<소설, 홀로 남은 티코의 내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