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정 아시잖아요

신부의 손을 넘겨받은 자의 여유

by 무너

세종대로는 점심산책으로 자주 찾는 길이다. 광화문국밥 앞에는 오늘도 줄이 길다. 직장인들이 차곡차곡 번호표를 뽑고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천천히 조선일보미술관 쪽으로 걷다 보면 성공회 성당이 먼저 나타나고, 영국대사관이 그 뒤를 따른다. 고딕과 현대와 돌담이 사이좋게 줄지어 있는 이 거리를 나는 좋아한다.

영국대사관과 덕수궁 사이에 난 작은 산책길에 접어들면 발소리가 달라진다. 궁 안이면서도 궁의 밖인 길. 아주 작은 말뚝 몇 개로 인도와 궁터를 갈라놓고 안인 듯 밖인 듯 걸을 수 있게 해놓은 길이다. 이 길은 고종이 겪은 치욕적인 역사를 재현해 놓은 일명 ‘고종의 길’로 이어지는데 항상 나의 선택은 미대사관 관저를 지나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쪽이다. 고종의 길을 지나 정동공원을 넘어 예원학교 돌담으로 걸어도 좋지만, 덕수궁길을 따라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직장으로 돌아가기에 더 빠르고 좋다. 이 길은 좁고 한적한 편이다. 물론 점심시간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든 직장인들이 몰려들긴 하지만.


오늘은 성공회 성당 앞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게 됐다. 걸음이 비슷했던 탓이다. 일부러 들을 이유는 전혀 없었음에도 그의 통화를 거의 80퍼센트 이상 들을 수 있었던 건 오직 그의 우렁찬 목소리 덕분이다. 그 우렁찬 소리에 덕수궁 돌담도 조금은 울렸을 것이다. 사내가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중년 남성이 아버지와 저렇게 공을 들여 통화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장인이 틀림없었다.


아버지. 공개적으로는 00이(아내인 듯) 편을 들어주시되 제 사정 아시잖아요. 하하하. 맞습니다. 아버지. 나름 제딴에는 OO이 피곤할 것 같아서 잠도 안 깨우고 있었던 건데, 뒤늦게 잠에서 깨더니 화를 낼 일도 아닌데 자꾸 화를 내고 하는 거예요. 아주 미치겠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가 아버지니까 이런 말씀 드리지만 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억울하고 해서 전화드린 거예요. OO이가 그런 게 좀 있어요. 아시겠지만. 네네. 언제든 전화주세요. 제가 점심때 모시겠습니다. 아버지.


영리한 남자인것 같다.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려 억울함을 토로하되, 첫마디를 "공개적으로는 OO이 편을 들어주시되"로 시작하는 명민함. 그러니까 아내의 편을 먼저 들어달라고 못을 박아놓고 자기 하소연을 꺼내는 방식인데 마지막에 장인과 독대 식사 제안까지 하는 걸로 보아 아내가 단단히 틀어진 것 같다. 그러나 남자의 통화에는 은근한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장인은 결국 사위가 사준다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안의 봉합이 당사자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장인으로부터 신부의 손을 건네받은 자의 자격으로 거래를 하는듯 했다. 그에게 장인은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선배 남편'이었다. 만약 저 전화의 화자가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상황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로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 공개적으로는 OO이 편을 들어주시되 제 사정도 좀 들어주세요. 여자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억울해서요. 제가 점심 한번 모시겠습니다.


상상만으로도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시어머니에게 아들 흉을 보는 며느리. 거기다 밥까지 사겠다는 여유. 아마 그 전화를 걸기까지 열 번은 망설였을 것이고, 막상 걸었다 해도 첫마디부터 목소리가 낮아졌을 것이다. 하소연은 중간에 사과로 변질됐을 것이고, 끝에는 어머니 심기를 살피는 말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통화를 마친 사내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 보인다. 억울함을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의 걸음이다. 같은 억울함도 누구에게는 전화 한 통이 아니라 혼자 삭이는 점심일텐데. 나는 사내가 걷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돌려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