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不ON 문화

공감하기 위해 탈출해 봤어?

영화 <'더 랍스터'(2015) / 요르고스 란티모스> 후기

by 무너

1. 호텔, 번식

메이킹 호텔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제공된다. 단 이 곳에서는 45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45일 동안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 호텔을 떠난다. 이를테면 ‘랍스터’랄까?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전에는 자위행위도 금지된다. 솔로와 커플이 된 사람들의 생활공간은 엄격하게 분리된다. 솔로들은 매일 ‘커플이 되어야 할 이유’ 따위의 유치한 교육을 받는다. 운이 좋아 커플이 되더라도 바로 도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위장커플이 아닌지 검증받아야 한다. 이 철저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은 자들만이 도시로 돌아갈 수 있다.
메이킹 호텔 사람들이 체류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호텔 주변의 숲에서 숨어사는 솔로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한 명을 사냥하면 체류기간이 하루 늘어난다. 쉽사리 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유일한 생존법이다.

2. 숲, 생존

메이킹 호텔을 거대한 숲이 둘러싸고 있다. 숲에는 솔로들이 산다. 커플들만이 살 수 있는 도시나, 커플이 되기 위해 생존게임을 해야 하는 호텔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숨어 산다. 이 곳에서는 무엇이든 자유롭지만 사랑은 금지되어 있다.
눈이 맞은 남녀는 잔인한 형벌에 처해진다. 메이킹 호텔에 체류 중인 사람들이 사냥하는 시간이 되면 숲속 솔로들은 생존을 위해 짐승처럼 뛰어다녀야 한다. 마취총을 맞는 날엔 바로 메이킹 호텔로 잡혀가 동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냉정하다. 설령 덫에 걸리더라도 누구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무덤도 파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호텔에 비해 자유롭지만 이 곳 역시 철저한 규칙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다를것이 없다.

3. 도시, 억압의 본산지

도시는 그런대로 살만하다. 그러나 커플이 아닌 자로 의심되는 경우 수시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아야 한다. 쇼핑을 갔다가 잠시 상대와 떨어진 경우 어김없이 경찰이 커플신분증을 요구한다. 대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한 것일까.

4. 객석, 공감을 위한 탈출

짝을 찾는 메이킹호텔 투숙자들이나 커플이 되길 포기한 솔로들이나 감시와 통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배경설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든 미래 어느 시점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인류는 스스로 극단적인 통제장치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규칙에 적응하기 마련이니까.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존이다.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배우자를 향해 총을 겨눌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자기자신의 생존이다.
이렇게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목표만 남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선택의 기회조차 누릴 수 없다.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이웃의 죽음이 당장 편안한 휴식에 방해될까 불쾌해 하는 사람들로 변해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채워진 덫을 스스로 풀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손으로 판 무덤을 향하거나.
커플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된 점이 있는 사람을 찾는 노력을 하지만 결코 누구에게도 공감하지는 않는다. 결국 진실한 사랑은 규칙과 억압의 밖에서만 존재하는 것. 사랑했다는 이유로 두 눈을 잃어버린 연인을 위해 주인공은 기꺼이 자신의 시력마저 포기하려 한다. 사랑의 감정까지 지배당하는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한 공감을 얻는 방법은 스스로 세상과 격리된 것이라고 생각했던걸까. 나는 그것을 또 한 번의 ‘탈출’이라고 읽었다. 주인공의 첫번째 탈출이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면 두번째 탈출은 공감을 위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