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Aug 23. 2024

건축공학과 그 사람

 날씨가 우리를 만드는 것이지 우리가 날씨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 또는 철학도 날씨가 만들어낸다.
독일의 검은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숨기 좋아했던 하이데거는 오두막에 폭풍이 치고 눈이 오면 그때가 철학자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 서동욱 <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 -




스무 살 여름이었다. 장마는 한참 전에 끝난 말복 즈음,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가던 길에 예고 없던 비를 만났다. 잠시 비를 피했다 갈지 얼른 뛰어서 약속 장소로 갈지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하느라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 한쪽에 서 있던 나는 축축해져 갔다. '거센 비는 아니지만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우산을 사러 가?'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멀찍이 있는 편의점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초록불로 바뀌면 뛰어야지 하는데 글쎄, 비가 그쳤다. 내 머리 위에만. 맞다 드라마 속 장면. 고개를 돌려보니 모르는 사람이 살짝 띤 미소와 함께 말했다.

"비를 좀 맞은 것 같아서요"

어딜 가는지 물었고 학생회관에 간다 하니 같은 방향이라며 함께 가자고 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친구를 만나면 그 모습으론 어딜 가기도 뭐해서 어차피 같은 방향이라니 철판 한 번 깔자 싶은 마음으로 순한 양처럼 그대로 우산 안에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수줍은 듯 감사하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신호등이 허락하여 한참 그 앞에 있었던 듯 느껴졌던 눈앞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정문을 지나고, 거기서 학생회관 옆 중앙도서관까지 쭈욱 뻗은 길을 걸으며 무슨 과인지 몇 학년인지도 물었다. 우산을 씌워준 대가로 순순히 알려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묻는 대로 대답하고는, 그러는 그쪽은 어느 과의 누구인지 묻고 싶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 나오지 않아 주저하다 애매한 시간이 흘러 그냥 발걸음을 맞추느라 땅만 보고 걸었다. 그것도 너무 푹 숙이면 우산 주인이 다시 말을 걸까 싶어 적당히 자연스럽게. 정문에서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이리도 길었던가. 어색한, 그러나 고마운 이 우산 속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그쯤, 미소가 느껴지는 말소리가 들렸다.

"다 왔네요"

낯섦과 어색함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느낌인 나는 '드디어!'라는 마음속 말을 듣느라 아주 잠시 현실을 떠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생회관이 비를 가려주는 곳에 나를 데려다 놓은 우산 주인은 내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는 벌써 몇 걸음 뛰어가고 있다. 학생회관에 도착한 뒤 갑작스레 거세진 비에 행여 목소리가 묻힐까 봐 급하게 따라가며 소리쳤다.

"우산요~!"

다행히 들렸는지 돌아오는 소리가 있다.

"집에 갈 때 써요"

열심히 따라갔지만 거리가 벌어진다. 더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과 세요~?"

적색편이? 도플러 효과? 희미하게 들렸다.

"건.축..공...학....과..... 요"

학년도 이름도 못 물어봤다. 어떻게 하지? 계속 따라 가? 나중에라도 우산은 돌려줘야 할 텐데, 아니 돌려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달리는 일에는 영 젬병인 사람이 생각하느라 판단하느라 더 느려졌었다. 너무 멀어져 버린 우산 주인을 쳐다보고 있다 화들짝,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간이 넘었다. 더는 생각을 멈추고 학생회관으로 뛰었다.


개학하면 꼭 찾아가리라 얼마나 다짐을 했던가. 그 다짐이 무색하게 개학을 하고 하루, 이틀, 사흘.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었다. 동아리 사람들 중 건축공학과 오빠에게 물었지만 그런 외모는 모르겠단다. 귀신이었나. 우산이 남아 있으니 그건 아닐 테고, 하긴 같은 과라고 전 학년의 모든 학생을 알리는 없겠지. 동아리 오빠의 모른다는 그 말을 붙잡고 늘어지며, 건축공학과 사무실에 가서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어차피 또 모른다는 말을 듣겠지. 이상한 사람 취급받으려나?




많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사람, 혹은 그런 일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결국은 우산을 돌려주지도 감사를 표현하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버린 빚쟁이는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날처럼 제법 굵은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지다 갑작스레 거세게 내리는 날이면 그 사람이 생각난다. 빚을 청산했다면 기억이야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남아있을까 싶다.


얼마 전, 자주 찾는 유튜버의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제목의 영상을 보았었다. '기버(Giver)'의 삶이 어떻게 성공으로 이어지는가를 다루는 내용이었고 듣던 중 귀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내가 베푼 선의는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다시 선행을 베풀게 하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여 결국은 자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

아차 하며 이제까지의 나를 돌아봤다. 우산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그 고마움을 대신 다른 선행으로 갚고 결국은 그 사람이 내가 받았던 그 친절을 어디선가 돌려받기를 기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갚을 방법을 알게 된 셈. 살아가는 동안 작더라도 조건 없는 선행이 숙제다. 그날의 나를 뽀송하게 지켜주었던 건축공학과 그 사람은 20대의 나이에 벌써 기버(Giver)의 삶을 살고 있던 것이었나? 그럼 지금쯤 성공을 했을까? 몇 번은 더 찾아볼 걸 그랬다. おけんきですか~~?






사진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엔, '소란'을 들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