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Nov 10. 2024

오늘은 파랑

속 시원~합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다지 걱정이나 기억에 남는 일들이 없었던 하루. 어떠한 고마움도 소중함도 느낄 수 없는 지극히 무채색의 하루. 지금의 우리를 만든 하루란 그런 무탈함의 합일지도.
                                                                                       -오하림, “나를 움직인 문장들” 중
오늘 하루는 당신에게 어떤 하루였나요? 당신의 오늘을 색으로 표현해 주세요.





* 무채색(無彩色) : 색상과 명도는 갖추고 있으나, 채도를 갖추고 있지 않은 색으로 하양과 검정, 회색이 있다. 그러나 남색을 무채색에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나무위키-


 해석하기 나름이나 내가 생각하는 무채색의 하루는 대체로 편안하지만은 않은 날인 것 같다. 푸욱 가라앉거나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분노와 절망으로 둘러싸인 날이거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이 없는 그런 날은 투명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일이 다 보이듯 예상이 되는, 마음의 어떠한 근심도 특별히 즐거울 일도 없는 내 심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이는 날 말이다. 그날이 진정으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아닐까. 엄마인 나는 흔한 날들을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아내로서, 딸로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시간으로 채워왔다. 그런 불안과 걱정으로 사는 삶은 꼭 어린 동생이 있는 초등학생 그림 같다. 채도 높은 선명한 그림을 열심히도 그려놓은 그 위에 아무런 생각 없는 동생이 회색이나 검은색 붓자국을 몇 번 휘갈겨버린 그런 그림. 덧칠해진 붓자국에 나름 선명했던 즐거움으로 채워진 그날이 덮여버리기도 한다. 이러다가는 분명 행복으로 그린 그림이 하나도 남지 않을까 두려웠던 차에 누군가 그랬다. 걱정할 시간에 기도하라고.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인데 의지로 안 할 수 있나, 그러던 처음과 달리 신기하게도 연습이 변화를 주었다. '걱정하지 말고 잘 될 거라 생각하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아직은 걱정스런 일들을 완전히 접어놓고 잠시 저 한쪽에 꼭꼭 숨겨두는 정도는 아니지만 필요한 경우 당장의 일에 집중하고, 어떤 금보다도 비싸다는 '지금'에 나를 두는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이 고운 사람 눈에만 보인대요. 보이시나요? The rainbow!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그날 해야 할 일을 하고, 한 번이라도 아이에게 남편에게 핑크 빔을 발사했다면 그날은 초록이다. 삶과의 사이에서 그린라이트랄까. 반대로, 분주하여 원하는 대로가 아닌 시간에 끌려다니고 일에 묻혀버린 날이라면 빨강. 열정적으로 왔다 갔다 바쁘게는 다녔으나 실속이 없었다면 기어이 다음 날로 넘어가는 시간까지 침대를 찾지 않기도 한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핑계로 영양가 없는 행동을 하며. 아, 미루었던 일을 처리해 편안해진 날이라면 보기만 해도 가슴까지 뻥 뚫리는 바다를 닮은 파랑. 피곤한 날은 회색, 푹 자고 일어난 날은 레몬의 노랑, 신나는 일정이 있다면 괜스레 기분까지 화사해지는 주황. 글을 쓰느라 기분과 색깔을 이어주는 생각을 하다 보니 평소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같은 감정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색이 떠오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오늘은 무슨 색이냐고? 속 시원한 ! 입원해 계시던 엄마가 퇴원을 하셨고 엄마 없는 날들 동안 밀려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멀리 있어 자주 찾아오지 못해 쌓인 미안한 마음이 같이 차근차근 떨어져 나갔으니까.


 대체로 초록이면 만족이지만 요즘은 투명이고 싶은 날이 많다. 나를 관찰하고, 가진 자원을 나에게 투자하고, 나아가고 싶은 방향으로 한 발짝 디뎌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진짜 나의 색이 만들어질 것 같아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겉옷이 아닌 피부와 같은 나만의 고유한 색 말이다. 물론 그런 날이라고 혼자서만 지내고 싶은 건 아니다. 나아가는 방향에 함께 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그 또한 고유한 나를 만드는 감사한 재료이기에 투명한 날이라면 언제든 OK. 대신 의도하지 않은 어떤 만남은 조심스럽다. 투명한 창은 밤이 되면 빛을 잃은 검은색이 되기에.

혹시 또 모르지요. 밤도 밤 나름이니 : -)





은하수 사진 출처 :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선물은 말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