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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an 06. 2024

글을 몰라 죄송합니다

단톡방 적응기

'그냥 이건 해야 해'
  

 브런치 프로젝트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어느 신인가 어깨너머에서 속삭였나 보다.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겁이 살짝 묻은 고민을 하면서도 손은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으니. 두려움 반 설렘 반 시작하던 나는 낯을 가리는, 약간은 의심병 초기 환자라 온라인 수업에서 사람을 얻을 가능성을 서릿발 는 계절에 찾는 빙수만큼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고 있는 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아직 못 따라가는 인간인 것이다. 대면하는 만남이 아니기에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눈치 보기나 밀당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고, 필요해 의한 시작이었으므로 글쓰기 방법이나 몇 가지 얻으면 그것으로 족할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던가. 약 한 달 뒤, 무지했고, 은혜로운 것을 보지 못하는, 속단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생판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수업을 같은 시기에 듣는다는 이유로 동기라 묶였다지만, 단체 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생면부지 사이라고 보일만 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만큼 세상 친밀한 모습이라 놀랐다. 그럼에도 이러다 수업이 종료되면 언제 옷깃이라도 스쳤냐는 듯 다시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기에, 소속감에 대한 욕심은 생기지 않았었다. 고백하자면, 순진했던 시절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덮어놓고 믿었다가 낭패를 본 일이 많았었다. 경험으로 치기엔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결과로 의심병에 걸렸고, 안전함을 느낄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느라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 해도 낯섦을 낯설어할 뿐 누구에게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있기에 얼굴을 본 것도, 함께 차를 마신 것도 아니면서 어쩌면 저렇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챙기는 말을 대화창에 올리는지 조금은 냉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으로 관찰을 했다.



    

 찜기에서 막 꺼낸 호빵 같은 단톡방. 뜨겁지만 달콤하여 계속 찾게 되는 곳. 글쓰기라는 하나의 배움에만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면 그렇게까지 뜨겁지 않았겠지만, 단순한 그것이 아니라 변화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이미 준비가 된 상태로. 성공을 위한 마라톤 경기의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총성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때마침 알려진 글쓰기 프로젝트 소식에 우르르 몰려들었고, 브런치 작가가 됨과 동시에 열심히 뛰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는 저만치 앞에서 매주 몇 편의 글을 발행하며 에디터 픽을 받거나 구독자 급등 작가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선두그룹에 속해 빠르게 나아가고, 또 누구는 잊을만하면 중계방송 카메라가 잠시 비추는, 가끔 발행하는 중간 그룹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핑계를 대며 한동안 발행을 하지 않다 보니 한 글자 쓰기가 더 어려워져 결국 브런치 팀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하는, 거의 잊힌 마지막 그룹의 사람들도 있다. 속도는 다르지만 모든 그룹의 사람들이 공통으로 아는 한 사람,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의 수장인 그녀의 힘이 다양한 그룹의 이 사람들을 서로가 오랫동안 응원해 온 사람인 듯 하나로 묶었고,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조차 팔자를 바꿔보자는 말로 마음을 동하게 하여 욕망 가득한 미래지향형 인간으로 변화시킨 것 같다. 동기들의 대화를 바라만 보던 의심병 초기 환자인 나조차 특별한 대상에 한해 완치가 된 것을 넘어 뜨거운 그 방들에 끼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하셨으니, 그녀의 진심 어린 말씀들은 실로 놀라운 힘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동기들의 친화력이 부러웠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나도 살짝 그 안에 끼어들면 같이 구르는 욕망의 눈덩이가 될 것 같은 근원 모를 용기가 생겼다. 각종 정보를 알려주며 예쁨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것저것 떠올려 보았지만, 남들보다 딱히 더 잘 아는 분야도 없는 것 같고, 인스타그램이나 글쓰기는 물론 글에 대해서조차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대체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나 하는 자책과 쓸모 있는 사람이어야 환영받고 사랑받는다는 강박이 있음을 알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뻔뻔 모드로 슬쩍 끼어볼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한동안 동기들의 글이나 브런치의 글을 보고 다녔다. 필요한 분야의 지식 책만 보다가 다른 이의 경험과 생각을 펼쳐 놓은 글을 보니 새로웠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밖으로 내놓아야 하기에 어느 정도의 선은 지켜야겠지만, 글은 소재의 한계도 표현의 한계도 없음을 깨닫고 진심으로 놀랐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놀란 김에 사고를 치고 말았다. 혼자 ‘그렇구나’ 하면 될 것을, 굳이 새롭게 느낀 사실을 다시 확인하거나 혹은 나도 그런 글을 써도 되는지 허락받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지인이나 시댁 때문에 힘들었던 얘기를 글로 써도 돼요? 그럼 흉보는 것 같잖아요’.

툭 던진 질문에 뚝 떨어졌다. 한여름을 방불케 할 만큼 뜨끈했던 단톡방의 공기가 순식간에 영하로. 아뿔싸! 입과 손이 얼어버린 듯 아무도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누군가에 의해 속상했던 일을 소재로 쓴 글이 다음 메인에서 팔리고 있었고, 한참 동기 중 한 분의 글이 비슷한 느낌으로 주목받고 있던 때였다. 악의는 없었기에 포장하자면 순진한 아이가 궁금하여 물은 질문이 어른들을 당황시킨 셈인데, 결국 실언을 한 것이다. 다행스럽고 감사하게도 빛과 같은 대처력을 가진 동기 몇 분 덕에 어물쩍 넘어갔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했지? 내 질문이 기본도 안 되는 거였을까? 글은 언제나 표준어만 사용하고 교훈적이거나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교과서적 틀을 갖고 있던 나라서, 내 경험 속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나타내도 되는 것인지를 묻는 거였는데, 그런 유의 글을 쓴 사람들을 남 흉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거구나..' 나 또한 첫 글이 학교폭력을 경험한 딸아이의 이야기였으니 따지자면 가해자 혹은 그 부모를 흉본 것과 다르지 않은데, 선생님께 허락받았으니 그대로 글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경멸하던 내가 나의 이야기와 남의 글을 다른 기준으로 보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이고, 소심하기에 조심스러워 대체로 상식적으로 행동한다고 자신했던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했다. 덕분에 겁쟁이 옷을 입은 나는 단톡방에 두고 영혼은 토마토가 된 얼굴로 그곳에서 나온 후, 언제든 다시 들어가 대화를 관전하거나 경기에 뛰어들어 함께 할 수 있지만 아무도 경비하지 않는 그곳이 내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기장이 되었다. 당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던 사랑방 주인장은 검댕을 묻혀가며 활활 타오르게 만든 아궁이 장작불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린 내가 미웠을 수 있고, 주목받고 있던 동기분은 나의 몹쓸 허언으로 졸지에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상황이라 당황스러웠을 수 있으며, 지켜보던 동기들도 어색한 공기에 적응이 어려웠을 수 있다. 물론 실언을 해 버린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그 뒤로 미운털이 박혔나 싶어 모든 행동이 더욱 조심스러웠다. 공식적인 단톡방에 질문을 함에 있어서도 몇 번을 고민하고, 동기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도 쓰다 마는 일이 세 번에 두 번은 되는 것 같다. 원래의 나도 외향형 인간은 아니지만, 내성적이고 말수 적던 아이에서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그래도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말은 하고 살았는데, 돌려 감기 한 듯 어린 나로 돌아가 버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의식적으로 노력한 끝에 가끔 그 단톡방에 들어가 괜히 어슬렁거려 보기도 하지만 +300이 넘는 숫자에 반사적으로 겁을 먹어 엄두조차 못 내는 날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의 얘기이고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과 나 또한 그러하니 필시 맞는 말이다. 존재 자체는 물론 자신의 마음 그리고 노력은 더더욱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누군가를 받아주는 인정은 가장 어렵기에 고귀하고 빛나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그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며, 누군가의 노력을 인정하는 것은 기꺼이 나를 낮추거나 상대를 칭찬하는 것이기에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회적 기술이라 생각한다. 어릴 때의 나는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었지만, 고단하고 바쁜 삶을 사셨던 엄마는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실만 한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고, 덕분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늘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에 집착할수록 속상함을 경험할 일이 많아졌고 언젠가부터는 거꾸로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이에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 그 방향으로 노력해 왔다. 사람의 심리상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무어라고 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은 되려 나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아마도 그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의 힘으로 많은 일들을 헤치며 살아온 거라 생각된다. 아직은 글도, 동기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다가가 보려고 한다. 잠재의식인지 신인지 모를 무언가의 말을 잘 들은 덕에 좋은 인연도 얻고 발전적인 습관도 만들어가며 감사함을 오랫동안 느끼고 싶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인정을 하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나 또한 인사이더가 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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