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지금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치열했던 3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끝내고 나면, 암묵적인 룰처럼 그 동안 하고 싶었던 머리 염색이며, 귀뚫기 이런 소소한 일상의 변화들이 시작되었다.(사실 이것 또한 라떼시절이겠지,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구시대적 이야기하면 6세에 귀 뚫은 딸아이의 눈망울이 휘둥그레진다.)
대학 진학 후 선배들의 방학 계획을 보아하니 큰 틀은,
1학년 여름 방학엔 운전면허 따기,
2학년 여름 방학엔 유럽 여행,
3학년 여름 방학엔 어학연수,
4학년 여름 방학엔 취업 준비를 하는 연간 계획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기본에 충실한 나는 위 네 가지를 실천했고, 큰 그림으로는 계획을 달성하였다.
그중 운전면허 따기. 내 관심 분야는 아니었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을 것이라며, 시간 있을 때 미리 해 놓으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또 부모님의 지원에 감사하며 계획을 실행했었더랬다.
나는 기본적으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Me Time을 가질 수도 있고, 급할 땐 택시를 이용하면 되었고, 걷기 운동도 가능하고 여러모로 지금껏 그래왔다.
대학 생활을 할 땐 자취생활을 하던 나에겐 차는 옵션사항에 없었고, 감사하게도 첫 직장 생활도 집에서 멀지 않은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심권이어서 차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간혹 영하로 내려가는 몹시 추운 겨울날, 동료들이 안쓰럽게 생각해서 차를 태워주곤 했는데, 그럴 땐 차의 편리함을 느끼긴 했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친절한 동료들은 늦은 저녁 하이힐을 신고 퇴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하루 동안 지친 피로를 풀 수 있는 나만의 퀄리티 타임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결혼 후 처음 신혼 생활을 한 홍콩, 이곳도 말해 뭐 할까. 세상 정신없고 혼잡하고 번잡스러운 이곳, 역세권에 살아 차 없이도 불편함 없고, 긴 장거리 연애 끝 신혼 생활이라 그냥 손잡고 걷는 게 좋았던 그 시절, 젊었고 건강했고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일 년 내내 덥고 습하고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동남아 나라에 12년 전 도착했을 때 처음으로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나 뜨겁고 타 죽을 거 같은 더위에 버스 정류장에서 서 있는데, 버스는 언제 올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됐고(지금에야 버스 도착 예정 시간표 앱이 있지만, 그때는 배차 시간도 15-20분 간격[비혼잡 시간 기준]), 택시는 그 당시 기준 booking fee $2.3-3.3을 내야만 잡을 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 비용이 왜 그리 아까웠을까. booking fee라는 게 보편적이 않았고, 그 당시 Grab/Uber 이런 Private Hired Car system도 없었을 때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 차 사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을 때 신랑이 단호박으로 미안하지만 안 돼라고 했었다. 나의 부탁을 거절하는 적이 거의 없는 그이지만, 그 당시 찻값은 기본 한국 아반떼 기준으로 1억 원[한화 환율]이 넘는다고 하였다. 도시 국가이며 환경을 중요시하는 이 나라에서는 정부에서 차량수에 제한을 두며,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Certificate of Entitlement(COE)라는 자격증을 사야 한다.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고, 10년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말에 언제까지 우리가 여기에서 살까라는 불확실성과 여행 좋아하는 우리에겐 그 돈 절약해서 여행 경비로 쓰자며 마음을 달랬다. (그 이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여행을 다녔다. 지금도 그 추억으로 후회없이 지낸다.) 그렇게 우리, 아니 내 인생 첫 번째 차에 대한 구매 욕구는 펼쳐 지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마음을 접으면서도 로컬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언제 차를 운전하게 될지도 모르니 이 나라 운전면허증으로 conversion 해 놓으라고 해서, 혹시나 몰라 BTT라는 이론 시험을 치고 면허증을 전환해 놓았었다. (시간 있을 때 일단 뭐든 해 놓자! 내가 늘 아이들에게 하는 말 'Just in case' )
몇 년이 흘러, 아이들이 태어났고(지금 생각해 보니, 첫째 유도 분만하러 가는 날도 나는 걷고 싶다며 대중교통을 타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갔더랬다.- 임산부와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는 나라여서 그랬던 듯, 이 주제로 추후 글로 풀어내고 싶다.) 그 사이 Privat Hired Car의 여러 업체가 경쟁을 시작하며 비용이 저렴해졌고, 버스도 출퇴근 시간 붐비지 않으면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탈 수 있게 바뀌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컸고, 이제는 유모차도 없이 대중교통과 택시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데,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들이 많아지고 남매의 관심사가 다르고, 나이차가 있다 보니 두 아이의 방과 후 활동을 따라다니며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예전과 달리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방과 후 활동도 늦은 오후/이른 저녁 시간이 되며 시간 싸움이 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Trigger로 작용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MIDLIFE로의 진입, FORTY YEARS OLD!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뭔가 불현듯 이제 아니면 나이 들어도 절대 운전 못할 거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정말 뜬. 금. 없. 이.
내 인생 두 번째, 운전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정확하게 짚어보자면 차에 대한 갈망이 아닌 내 장롱면허가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내 자아의 실현이라고 하겠다. 먼저 MIDLIFE에 진입한 선배로써 신랑은 나의 심란한 마음과 혼동의 시기를 너무나도 잘 이해해 주었다. 보통의 남자답게 차를 너무 좋아하는 그이지만, 지금 이 시기의 COE가격을 보고 있자니 이게 맞는 선택인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나의 첫 운전의 리스크를 감안해서 맘 편하게 중고차를 구입하는 게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그럼에도 가격을 보면 쓰라린다. 고작 2년 11개월 쓸 수 있는 차를 큰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니. 특히 얼마 전 한국에서 신차를 뽑았다는 친오빠의 가격을 아는지라 더 속이 씁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한 달간 먼저 차량 렌트를 하고 신랑과 함께 운전대를 잡고 도전, 운전석이 오른쪽이라 다르긴 하지만 어쨌거나 운전이 처음인 나에겐 큰 상관이 없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뭐다? 자신감! 아이들에게 엄마에게 용기를 북돋아 달라며 응원을 부탁했고, 내 옆에 앉아 나보다 더 긴장하며 손에 땀을 쥐는 그이에게는 Inner Peace를 속으로 외치며 인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나의 운전은 마흔에 겨우 시작을 했지만, 스스로에게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부어주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겠지만, 누군가에는 큰 마음먹고 깊은 숨을 여러 번 들이마셔야지만 하는 용기 있는 도전 이야기라는. 오늘도 안전 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