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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Dec 29. 2020

즐거웠다 나의 이십대

홍대 클럽

 홍대씬의 밴드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요즘 싱어게인의 30호 가수 덕질을 시작하면서 그때, 그 사람들, 그 장소들에 대한 기억들이 밀려온다. 잠깐 딴짓하던 새 갯벌만 가득하던 바다에 밀물이 가득 차오른 걸 봤을 때 처럼.


 스무살까지 죽도록 공부만한 덕에 신촌 인근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나는 술과 흥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 앎은 은은하게 축적되던 지식들과는 달리 아주 강렬하고 짜릿했으며 휘발성 짙었다. 그 무렵 나는 아마 처음으로 엄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네가 이 나이에 놀면 얼마나 논다고. 서울로 대학 가봐라 낮에도 별이 뜨지. 지금 놀고 싶은거 참았다가 서울 가서 놀아. 


 그래. 그토록 원했던 인서울의 목표는 이것이었구나. 별천지였다. 그 중에서도 홍대. 당시 내 삶의 이유. 영의 고향.


 특히 나는 홍대인지 상수인지 모를 그 어중간한 지점의 클럽들이 즐비한 곳들을 좋아했다. 양식당에서 10시쯤 아르바이트를 마치면 부리나케 고고스2로 향했다. 오래되고 힙과는 거리가 먼 고고스2에 간 이유는 하나 뿐이었는데, 자정까지 데킬라를 무제한으로 뿌렸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해피아워를 운영하는 바는 술에 자신이 없다는 거지'라고 뭘 좀 아는냥 거들먹 거리기도 했으나(꼬시려고 한걸테다) 내게는 일절 상관 없는 일이었다. 당시 나는 세 잔이면 맛이 가는 데킬라를 숭배하고 있었으니 고고스2는 신전이나 다름 없었다. 

 

 고고스2는 브리트니스피어스 Toxic이나 비욘세의 Love on Top 같은 오래된 띵 팝송들을 틀었고, 데킬라를 손에 쥐고 모르는 사람들과 아는 노래들을 목청 높여 불렀다. 지구촌이 하나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미 사대주의 만세! 처럼 우스운 소리도 지르곤 했다.


 겨울에 헐벗고 있는데도 데킬라와 비욘세가 가득한 바 안은 너무 더웠다. 문을 박차고 나오면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었는데 영혼들이 빠져나가는건지, 나갔던 애들이 돌아오는 중인 건지. 아무튼 위협적인 계단을 내려가면 1층에 FF클럽 입장표를 파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 유명한 노래나 크게 틀어주는 고고스와 달리 FF는 공연을 한다고 했는데, 입장료를 내는 것도, 공연을 한다는 것도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들어간 까닭은 입장료를 5천원 내고 사면, 프리 드링크를 준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자정이 지나서 고고스는 데킬라 무제한 이벤트를 종료했고, 5천원에 프리 드링크도 먹고, 클럽 구경도 하면 좋겠다 싶었다. 지하로 터덜터덜 들어갔는데 웬걸. 드라이아이스가 초록색 조명과 붉은색 조명을 번갈아 받고 있었고, 중학교 강당처럼 작은 무대에는 밴드가, 무대 바로 앞에 즐비한 사람들은 죄다 머리를 흔들며 뛰고 있었다. 낡고, 이상하고, 어색하고, 덥고. 그랬다.


 생경한 장면에 놀라기도 잠시 그냥 나는 프리 드링크나 한 잔 받으면 그만이었다. 술잔을 들고 춤추는 무리들을 요리조리 피해 뒤로 빠졌다. 술에 취해서 뿌연 드라이아이스 속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일렉기타 소리와 베이스 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오묘함 속에 섞여 비운 잔을 옆에 두고 나도 춤을 췄다.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점점.


 눈을 뜨니 천장. 옆에 사람 없음. 옷 입고 있음. 머리 아픔. 옷은 고고스2에 있었는데 그래도 잘 챙겨서 집에 왔네. 아이고 장한 나. 그 후로 FF클럽을 몇 번 더 갔으나 기억하는 가수는 없다. 취해서 가는 마지막 행선지였으니까. 아주 무척 취했었지. 어쩌면 30호 가수도 뿌연 드라이아이스에 가려진 밴드 중에 하나였을지도 모르지. 아니 어쩌면 기억이 나지 않는 귀갓길에 스쳐간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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