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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이가기전에 Mar 28. 2021

왜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았을까?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 막방 소감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삶은 지독하도록 고단했다. 가난했고 아팠고 괴로웠고 그래서 슬펐다.

엄마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주기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했었다. 최선을 다하는 방법은 하나 엄마의 유일한 행복이 되는 것, 둘 엄마의 불행을 들어주는 불행받이가 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행복이 되는 것보다 불행을 들어주는 편이 더 쉬웠던 것 같다. 점점 올곧게 자라면서 엄마의 행복이 되는 것이 확실해졌을 무렵부터 나는 엄마의 불행을 들어주는 것이 퍽 어렵게 느껴졌다. 매일 같이 똑같은 아빠와 시가에 대한 험담, 엄마 삶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는지에 대한 푸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 때문에 삶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신파 같은 결론까지.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를 지겹게 듣자니 엄마와 전화 통화 하는 것이 점점 꺼려져 갔다.


어느날인가 또 엄마의 뻔한 레퍼토리를 듣자하니 나는 퍽 지겨워져 

"그럴 거면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는 게 어때? 이제 우리도 다 키웠잖아"

라고 말을 꺼냈다. 수백번도 더 떠올린 생각이었으나 엄마한테 직접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의 기원전 500년전부터 시작했을 법한 켜켜이 쌓인 고난의 행군 이야기를 듣다 못해 꺼낸 말인 것도 있었으나, 말을 하고보니 왜 진즉에 헤어지지 못했는지 의아스러웠다.


"요새 황혼 이혼이 유행이래잖아. 졸혼도 있고. 잘 생각해봐."


옳다구나할 줄 알았던 엄마의 반응은 영 의외였다. 이해안되는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아무튼 결론은 그래도 이혼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왜였을까? 지겹도록 불행하기만 했다는 당신은 왜 아빠랑 차마 갈라설 수는 없었을까? 정말 자식들 때문만이었을까? 그렇다면 자식이 이혼을 하라고 했는데도 왜 헤어지지 못할까?


예능 '우리 이혼했어요'의 시즌1이 막을 내렸다. 첫화부터 한편도 빠짐없이 챙겨 보면서 나는 매편마다 눈물을 쏟았다. 이상했다. 이혼의 경험도 없고, 충만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내가 이런 이야기들에 가슴이 미어지게 공감하는 것이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이제 막 서른이 된 내가 이영하-선우은숙의 이야기에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다는 점이었다. 내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리하고자 글을 써본다.


선우은숙은 연애시절 이영하를 많이 사랑했다고 했다. 이영하가 집으로 전화를 걸면 본인이 못받을까봐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로 사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고, 아이도 낳아 살았다. 그와 함께 이룬 것들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커지면 커질수록 사랑하는 마음보다 이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커졌던 그녀는 본인이 서운한 것들, 화가나는 것들을 차마 이영하에게 전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을 깨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영하는 말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벽이 쌓였고 끝내 헤어지게 되었다.


방송을 통해 선우은숙은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내면서 이영하의 당시 마음을 물었다. 사과를 받았고, 오해를 풀어갔다. 쌓아두었던 벽이 허물자 그들은 마침내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을 수놓았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이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의 신혼여행 사진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자식 때문이었더라도 그들이 결혼을 한 이유는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정 그들이 자식이 장성한 지금에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아빠가 결혼한지 어느덧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세월이 서로에 대한 원망과 비난만으로 채워졌을리 없었다.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다면 뭐가 그리 밉고 싫었을까. 내가 보지 못했던 엄마와 아빠의 생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 땅에 태어나기전에 그들은 연인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왜 엄마 아빠는 이혼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질문의 뻔한 답을 알고 있다. 나 때문이라고 하겠지.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오늘은 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이렇게 익명의 글로 나는 다 알고 있다고 적어보련다. 당신들은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헤어지지 못했노라고. 힘든 결혼 생활 속에서 그 사랑은 빛을 바랬지만 여전히 당신들의 마음 한 모퉁이를 터질듯이 채우고 있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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