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도

지금도 빛나고 있어

by 창업가제이

우리는 어느 여름, 앱 개발을 시작했다. 난 필요한 들어갈 자료를 정리하고 관리해 주는 일을 했다. 하루에 한두 시간쯤 일을 하고, 유치원비 정도를 벌었다. H의 배려이기도 했다. 이왕 시작하게 된 거 일을 배우고 싶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 H의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했다. 집에서 서울 사무실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오랫동안 동네를 벗어나는 건 남편의 차를 탈 때나 있는 일이어서인지 여름날 서울행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두 번쯤 다녀오면 하루는 온전히 쉬어야 회복이 되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 일에 맞게 내 성향을 바꾸는 건 몹시 어렵다. 난 소극적이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못 견뎌 한다.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계산적이지도 못해 돈 얘기가 어려웠다. H는 나와 반대의 성향이고, 일이 똑 부러졌다.


다시 집으로 도망을 가야 할까?


왠지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만큼은 아니어도 뭔가 비슷하게라도 해내고 싶었고 돈이 벌고 싶었다. 왕복 4시간의 출퇴근도 일을 배울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이 일을 내 것으로 만들면 더 이력서를 넣을 일이 없겠지. 나에게는 동아줄 같은 일이었다.


이틀을 사무실에 출근해서 H가 일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집에서는 구직자들에게 연락하거나 회원을 모으는 일을 했다. 전화벨이 울리면 마음이 불안했다. 구직자에게 전화할 때면 속으로 ‘받지 마. 받지 마’ 하는 마음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기는 참 어렵다.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이기도 하고 그동안 온실에서만 자란 게 아닌데도, 거친 사람들을 대할 때면 왠지 자꾸 작아졌다.


"그냥 감정 섞지 말고 이야기하면 돼요. 사실만 전달하고요."


"가입하시고 일하시면 된다고 하세요."


이야기를 전할 때 과하게 친절하려고 하고, 말이 길어지는 나는 단순하게 용건만 전달하는 H의 화법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녀의 스크립트 그대로 핸드폰에 저장하고 들여다보고 연습했다.


나를 바꾸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만의 유리 천장은 왜 이리 두꺼운지 깨지기는커녕 금도 가지 않았다.


옆에서 앱 개발을 돕고 일을 배우며 늘 무언가 아쉬웠다. 1인 기업가로 일하는 그녀를 보니 나도 내 것을 하고 싶었고 소장이라는 직함도 달고 싶었다.


‘우리가 건축 설계 사무소 소장되려고 했지, 직업소개소 소장 될 줄 누가 알았어요.’


이런 농담을 주고받고는 하는데, 뭐라도 되고 싶었다. 내가 이럴 때마다 남편은 돈 벌어 오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을 들들 볶느냐고 한다.


"몰라, 나도. 근데 나도 뭐라도 하고 싶어. 내 힘으로."


상담원 경력이 짧은 내가 직업소개소 대표가 되려면 두 가지 중 한 가지 자격을 취득해야 했다. 사회복지사 2급과 직업상담사 2급. 사회복지사는 취득까지 1년, 직업상담사는 동차 합격하면 4~6개월. 독학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만, 난 독학은 자신 없었고 빨리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성격 참 급하다. 홀린 듯이 직업상담사 자격증 학원을 알아보고 과정 시작 2일 전에 등록했다.


첫 수업 날,


내가 할 수 있을까. 세상 처음 듣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홀린 듯이 수강 신청을 했던 나를 후회했다. 자격증 공부는 대학교 4학년 건축기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너무 마음만 앞섰다. 일단 여정에 올랐으니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의 수험생활이 시작된 거다. 하루 4시간 이상 이어지는 수업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복습은 커녕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널브러져 두 세 시간이 지나야 기력이 회복됐다. 저질 체력.


다양한 나이대 분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고, 난 그중에 자격증 시험에 달인인 언니 둘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게 됐다. 언니들은 친절했고 이해가 빨랐다. 내 첫인상이 새침해서 어려웠다고 했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다. 낯을 가릴 뿐. 모범생 언니들 덕에 공부를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같은 수업을 들었는데 다음 날 나만 내용을 잘 모르면 참 뻘쭘했다. 겨울에 시작한 공부는 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둘째는 여섯 살 언니가 되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서둘러 보내고 나의 핑키(분홍색 스파크)를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잰걸음으로 학원으로 향한다. 10분에서 15분 정도 걸렸는데 언덕이라 참 힘들었다. 매일 지각이다. 처음 몇 번 말고는 거의 몇 분씩 지각했다. 지각생 주제에 가끔은 학원 앞 스타벅스에서 두유 섞은 커피를 사 들고 들어갔다. 할 건 다 한다. 공부는 여전히 어려웠고, 1차 필기 시험을 앞두고는 전전긍긍의 대명사답게 걱정을 이고 지고 살았다. H는 공부하는 나에게 뭐라고 말도 못 하고, 내가 하던 일까지 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그녀는 나에게 시간을 투자했다.


반신욕을 하면서도 기출 문제를 풀고, 잠들기 전까지 앱으로 기출문제를 풀다가 얼굴에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잠들었다. 학원을 다녀와서 복습하다가 아이들이 오면 저녁을 챙기고, 잠들고 나면 다시 컴퓨터방 책상에 앉아 공부했다. 새벽 한 시쯤 잤다.


‘빨리 자. 엄마 공부해야 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과 시험 점수는 비례한다는 말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다시 이 시간을 보내야 하고, 과정형의 사회복지사가 아닌 검정형 직업상담사를 택한 의미가 없어졌다.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남편도 힘들었다. 공부하면서 불안해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테지. 시험장에 나를 내려 주고 시험이 끝나면 맛있는 저녁을 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더욱더 한 번에 합격하고 싶었다. 대학 입시 시험도 아니고, 남들 독학해서 따는 자격증을 가지고 유난이다.


다행히도 1차에 합격하고, 2차 실기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기출문제 중 강사님이 추려 준 250문제를 통째로 외우면 합격이란다. 왕년에 깜지 좀 썼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답을 정리하고 외우기 쉽게 대본을 만드는 시간만도 오래 걸렸다.


하아, 이래서 공부는 어렸을 때 해야 하나.


주말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어 잔뜩 싸 들고 동네 스타벅스에 갔다. 다들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쁜 곳이라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공부할라치면 애들이 유난히 나만 찾는다.


결국, 동네 독서실에 가기로 했다. 2차 시험을 2주 정도 앞두었을 때다. 주말 아침에 나와 점심을 잠깐 함께 먹고 저녁이 되어서 집에 오거나, 저녁에 다시 독서실로 갔다. 외워도 외워도 불안한 시간.


시험 2일 전 함께 공부했던 언니와의 통화.


"불안한 건 알겠는데, 지금 버릴 건 버려. 60점만 넘으면 되잖아. 자꾸 내용만 늘리면 안 돼.

그냥 공부한 것만 확실히 써도 60점은 나올 거야."


언니는 실기 시험을 90점 이상 받았다. 자격증이 10개는 되는 멋진 언니.


2차 실기 시험 날, 남편은 나를 시험장에 내려 줬다. 시험이 끝나고 먹을 메뉴도 이미 정해 두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검정 펜과 지우개, 수험표, 연필을 책상에 올려 두니 손에서 땀이 났다.


‘아, 정말 붙어야 해. 떨어지면 안 돼. 또 공부할 수는 없어.’


시험지를 받고 내가 쓸 수 있는 문제를 먼저 체크한다. 확실히 답을 아는 문제.

‘오, 60점은 되겠다.’ 연필로 살살 쓰고 볼펜으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정성스레 연필을 지워 갔다.


시험지는 내 손을 떠나갔고 난 영혼까지 털어 냈다. 이제 가자. 맥주 마시러.

12월에 시작해, 합격자 발표까지 5개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작과 공부.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2차 실기 발 표창을 여는데 가슴이 얼마나 떨리는지.


드디어 합격!


아싸! 다시 공부 안 해도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같이 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