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빛나고 있어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도 지킬 수 있어
H와 나는 같은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일했다. 친하지 않지만, 안 친하지도 않은 아주 적당한 거리. H의 기억 속에 나는 취향이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신발을 보고 사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다음 날 내가 신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신발을 사지 못했단다. H는 작은 체구에 열정이 넘치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3년쯤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힘들 때, 그게 생각이 났는지, 우연히 만난 학교 선배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같은 인천에 산다는 게 그 선배와 나의 연결고리였다. 우리는 그게 인연이 되어 결혼했고, 난 결혼을 앞두고 퇴사를 했다. 우리가 결혼할 무렵 H는 이미 육아 휴직 중이었고,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스러운 둘째가 생겨 퇴사했다. 회사 일을 모두 대신 해야 한다고 해서 ‘대리’라던, 우리의 열정을 쏟아붓던 시간이 멈추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도 내 안에 깊숙이 품고 있는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일상은 나를 자꾸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아이들과 남편이 있어 행복한 일상과는 별개였다. 나는 인천 서쪽에, H는 서울 강북에서 다르지만 닮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코디 일을 할 때, H는 책 방문 판매 일을 했다. 영업 수완이 좋고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그녀는 승승장구 했다. 그런 H가 부러웠다. 그렇게 2, 3년쯤 흘렀을까. 조직에서 한계점을 느낀 H는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것들을 두고 퇴사를 했다. 그 안의 미묘한 경계심과 긴장감들이 있었을 거다. 별다른 기술 없이 아이를 업고 할 수 있는 엄마의 일 대부분은 영업직이다. 시간이 자유롭고 시간 대비 고소득이지만 때로는 실적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단추를 올리기도 한다. 중심 잡기가 어렵다. (내 경우에 한해서다. 잘하는 분들은 너무나 많다.)
H의 부모님은 인력사무소를 꽤 오래 하셨다. 많이 성공하셨고 돈 되는 일인 걸 알기에 권하셨다. 내 일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어서 였을까. H는 그 일을 시작하기에 고민이 많았고 망설였다. 그러던 중 요즘 앱들이 많이 생겨나서, 부모님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앱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굳이 수천만 원을 들여 앱을 개발하지 않아도 직업소개소 일은 잘 돌아간다. 잘만 하면 대기업 월급 이상 수익을 내는 일임에도 일을 찾아서 하는 H를 주변에서 말렸다. 1인 기업으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건 할 만하지만, 앱 개발은 다른 일이다. 준비할 게 많고 정리할 내용도 많다. H는 나에게 앱 개발 일을 함께하자고 했다. 사실 그전부터 직업소개소를 인천에서 해 보겠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람 대하는 게 쉽지 않은 나는 그냥 그 일은 그녀이기에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것저것 배우고 있었는데, 온라인 부업으로 몇억! 하는 부업들을 시작했다. 가입비가 몇십만 원 하는 그 부업. 몇십만 원이 들었다는 건 남편은 모른다. SNS는 카카오스토리밖에 모르던 나는 인스타부터 블로그 등을 시작했는데. 인플루언서 피드를 따라 하다 보면 밤새우기 일쑤였다. 남편은 일도 안 하는데 잠도 못 자는 나를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것을 시작하고 잘 모르는 상태니, 광고에 낚이고, 광고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내가 가장 잘하던 일에서 단절되니, ‘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석 달만에 5천. 이런 블로그 네임 카드에 넘어가는 거다. H는 잊힐 만하면 함께 일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할 수 있다고, 그냥 하면 된다고.
일을 그만두고, 다시 할 일을 찾아 헤맨다. '9 to 6'만 아니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아이 맡기고 '9 to 6' 라도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가. 결과는 뭐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력서를 쓰고 거절당하고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할까, 용기 내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