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이 지나간 자리
어처구니없게도 미각을 상실했다. 아니, 후각을 상실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까. 얼마 전 오미크론을 세게 앓았다. 아무리 코를 찔러대도 음성이 나오던 잠복기 때 나는 확신했다. 너무도 낯선 통증이 나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대바늘이 몸에 쑥쑥 박히는 느낌을 알까? 친구가 이 얘기를 듣더니 누군가 나를 xx인형으로 만들어서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 했다.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충분히 설득력 있는 표현이었다.
극심한 몸살을 겪을 때만 해도 나의 입맛은 살아 있었다. 나는 입맛을 잃어본 적이 거의 손에 꼽는다. 어릴 때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와 ‘어벤저스’의 스칼렛 위치라도 된 듯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독감을 앓을 때 정도였을까. 이번 오미크론이 가져다 준 몸살 다음에는 목구멍에 침을 쑤셔 넣기도 힘들었던 인후통의 단계가 찾아왔는데 그때도 나의 입맛은 도무지 굽히는 법이 없었다. 죽은 듯이 누워서 식은땀을 흘려가며 간신히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시절임에도 그랬다.
당시 유튜브와 배달의민족은 나의 구원자이자 절친한 친구와 다름없었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줄기차게 그것들만 들여다보았다. 먹고 싶은 건 무궁무진했다. 양심상 탄산음료와 커피는 멀리했지만, 치킨, 탕수육, 피자 같은 아무래도 환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들을 시켜댔다. 그러다 몸이 가뿐해질 무렵 놀라운 현상이 나를 방문했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산책에 신난 강아지처럼 봄날의 기운을 킁킁대며 동네를 마구 걸어 다니다 한 카페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는데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그간 참고 참아온 카페 라테를 주문하고, 나의 테이블에 그것이 당도했을 때는 성령이 임한 듯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한 모금을 들이켠 순간 응? 혀끝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유로 만든 하트 모양 거품에 코라도 박을 듯이 깊게 냄새를 빨아들여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카페 직원이 원두를 갈 때도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오미크론 후유증인가. 무맛 무취가 되어버린 라테를 거칠게 들이켜고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악취의 온상이라고 느껴온 김치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코에 느껴지는 어떠한 자극도 없었다. 당시 임시보호 중이던 강아지에게 다가가 몸통에 코를 비벼봤지만 일말의 고소한 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덜컥 겁이 났다. 잠시 숨을 골라야 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재미없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삶의 대단한 낙이 하나 사라진 것이다. 그나마 매운 것을 먹을 때는 통각으로 무언가를 먹고 있다고 인식할 수 있어서 매운 닭볶음탕 따위를 시켜댔다. 나는 이 시기 내심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했지만 혀가 무감하니 오히려 더 먹게 되었다. 뇌가 만족하지 못하니 줄곧 배가 고팠던 것이다. 두꺼운 한우 등심을 구워 질겅질겅 씹었다. 그저 고무줄을 씹는 느낌이었지만, 입안에 뭔가 가득 찼다는 감각만으로도 약간의 위안은 됐다.
평소 나는 요리하지 않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만끽하는 미식가였다. 당근도, 양배추도, 고구마도 다 날것인 상태가 가장 맛있었다. 그게 다 예민한 혀를 가진 덕분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살았다. 단순한 취향인 줄로만 알았다. 갑자기 혀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전국의, 전 세계의 그토록 수많은 맛집을 탐방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새벽에도 원한다면 무엇이든 먹어댈 수 있었던 것은 다채롭게 맛을 잘 느끼는 혀의 공로가 컸다. 그렇다면 내 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혀를 영영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혀를 무덤에 묻고 혼자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제목은 정가영 감독의 단편영화 <혀의 미래>(2014)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초봄에 써둔 것이다. 지금 읽어보니 새삼 재밌어서 발행한다.
*2023년 11월 현재 나의 혀는 불행히도 90퍼센트만 돌아온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