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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a Feb 20. 2019

호텔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이다.

대학생 때부터 호텔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내가 친구들 중 가장 먼저 호텔리어가 되었다. 호텔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귀에 딱지 않도록 들어왔던 터라 나의 불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우울해했다. 그런만큼 호텔이라는 특성, 고객에 대해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떠한 환상도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마주한 호텔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 속에서 무수히 만난 고객들과 발생한 에피소드들은 나의 이야기보따리함에 한움큼 담기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라고 느꼈다.

경기불황이니 뭐니 해도 수십, 수백만원의 금액을 하루아침에 쓰고 가는 고객들을 참 많이 본다. 특1급 호텔의 기본 요금은 1박에 30만 원 남짓이다. 아무리 비수기에 특가로 구매한다 할지라도 20만원이 훌쩍 넘는 객실료를 결제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고소득자들이다. 하지만 대부분 가장 기본 타입의 객실을 예약할 뿐 1박에 300만원을 훌쩍 넘기는 스페셜 스위트 객실은 가격을 듣고 예약하지 않기 마련이다. 한 번 예약을 진행했던 고객은 30대 정도로 되어보이는 예쁜 목소리의 여자 고객님이었는데, 가격을 안내하고 당연히 다시 전화준다고 답하겠지, 라는 예상을 깨고 2박을 덜컥 예약했다. 예약과 동시에 결제가 진행되는데 500만 원 가까이 하는 객실료를 일시불로 결제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궁금했다.


한 분야에 오래 일하다보면 그 직업이 얼굴에 비친다.

한 번은 은행 고위 관리직의 의전을 담당했었다. 대부분 직급이 상무, 전무 등이었기 때문에 금융업에 몇 십년을 몸담고 있으신 분들이었다. 여러 사람의 의전을 담당했지만 이토록 질서정연하고 엄중한 분위기의 고객을 응대해본 적이 없어 한 편으로는 귀엽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그 분위기에 압도당할 것 같기도 했다. 임원들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는데 더 철저하고 빡쎈 느낌이 들었다. 호텔을 이곳저곳 안내해주는데 신기한 것은 그 누구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명은 나에게 뭔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눈치였는데 이내 그 질문을 거두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수십명의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내가 통제할 필요가 전혀 없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단체 고객을 이끌때면 꼭 한 분 정도는 다른 것을 구경하느라 같이 챙겨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약 20CM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다. 그런 모습이 왠지 귀엽게 느껴져서 농담 한 마디 던지려다가 관뒀다.


호텔리어들은 불륜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다.

아무래도 숙박업소이다 보니 불륜 커플들도 심심찮게 본다. 내가 생각했을 때 호텔리어는 모르는 척의 대가들이다. 혹은 별 생각이 없거나. 호텔리어는 고객을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 것이 의무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고객 동선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눈빛, 행동, 동작 등을 면밀히 살피게 되고 그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정말 재미 있는 건 이왕지사 다 아는데도 자신의 불륜 상대를 화장실 같은데 들어가 있으라고 하는 고객이다. 그 모습마저도 다 보이는데, 괜히 민망한 걸까? 실제로 몇 십년 일한 지배인님들한테 이야기를 들으면 고객과 함부로 컨택했다가 바람핀게 들통나서 이혼하네 뭐네 난리가 난 집도 있다고 한다. 이런 개인적인 장소라는 특성상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호텔은 의, 식, 주가 해결되는 곳이다. 그만큼 고객의 희노애락과 삶에 대해서 엿볼 수 있는 특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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