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 이문세
어릴 때부터 나는 오래된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새로 사주는 옷보다 사촌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는 것을 더 좋아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새로 생긴 쇼핑몰보다 전통시장을 구경하는 것이 더 즐거운 걸 보니 취향은 여전한 것 같다. 오래된 것을 좋아한다는 이 취향 때문인지 어느새 한국의 오래된 노래들에 매료되었다.
오래된 노래들은 시대가 다를 만큼 내가 살면서 느끼는 미학과는 다르게 표현되는 가사도 있고 특유의 정직함과 애틋함이 나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공감되는 노래가 있고 공감은커녕 이해하려 애써봐도 멀어지기만 하는 노래도 있다. 멀어지기만 하는 노래들을 꼭 이해하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동경심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그저 멋져서 자꾸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오래된 노래들을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주로 엘피바를 찾아가서 음악을 수집한다. 엘피바는 좋은 스피커와 멋진 공간은 물론 노래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나에게는 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혼자서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해서 들었다면 몰랐을 노래들을 여기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노래 그리고 이야기들을 만날 수가 있다. 어쩌면 진정한 음악감상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과 가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노래들은 흔히 추억의 노래로 분류되는 노래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시절을 살지 못했기에 아무런 추억이 없다. 추억이 없는 대신에 누군가가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준다면 귀담아들을 수도 있고 노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함께 나눈 대화들이 나만의 추억으로 쌓이고 있다. 어떤 노래는 만화 내용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었다거나 또 어떤 노래는 좋아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 때 들었다는 슬픈 추억이 담긴 노래였다거나 이야기는 노래만큼 아주 다양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엘피 음악이 얼마나 정겨운지 충분한 설명이 되겠지만 또 다른 정겨운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엘피는 음악과 함께 지지직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낯선 소리였고 기계가 고장 난 줄 알고 당황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오해와 달리 아주 정겨운 소리였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야 나는 소리였으니까. 사람들의 손이 닿아와서 또 세월이 흘러서 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멋스럽다. 그 정겨운 지지직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엘피가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왔는지 어떤 공간에서 보관이 되어 세월을 보내왔는지 문득 상상하게 되기도 하고 엘피마다 들려오는 정겨운 소리가 다르기에 마치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까지 들게 해준다. 잡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 나는 소리인지를 알고 나면 잡음이라는 말보다 확실히 정겨운 소리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며 그 소리가 엘피를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정겨운 누군가의 이야기와 지지직 소리를 떠올리며 오늘도 추억의 노래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