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운 계절

산책 - 백예린

by 레잉

나의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장 두려운 계절이 되어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하늘이 데려간 계절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을 또 데려가는 게 아닌가 두렵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던 고통스러운 날들이 떠올라서 두렵고 또 그치지 않았던 눈물이 그쳐있어서 두렵다.


어느 해와 다름없이 잘 보내고 있던 작년 겨울은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은 영원할 줄 알고 싶었던 것들이 영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느끼게 하고 매 순간이 소중해지기는커녕 매 순간이 두려워지고 매 순간을 망치며 보냈다.

언젠가는 헤어지는 날이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었을 텐데..

아니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주 먼 미래 이야기인 줄 알았고 내가 나이 드는 일만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나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의 시간도 주변사람들 시간도 아주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먼저 떠나간 할머니는 항상 사랑을 듬뿍 주시고 언제나 따뜻한 분이셨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알고 지낸 사람인 마냥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분이셔서 같이 다니다가 당황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그만큼 혼자 있는 것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또 사람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셨다.

그런 모습과 달리 내가 마지막에 본 할머니의 모습은 많이 불편해 보이고 많이 편찮으셨다.

낯선 할머니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손만 잡아드렸는데 온 힘을 다해 손을 움직이시는 게 전해져서 너무 슬펐다.


시대 탓하기는 싫지만 그런 할머니를 세상모르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시선이 있었던 걸 어렸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마치 고생이란 아주 모르는 사람처럼.

따뜻하고 밝은 사람일수록 그만한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 할머니에게 그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저 행복하게 잘 사셨겠지 했는데 장례식날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들려줬던 할머니의 잘난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부분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다음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할머니를 지켜줄 어른이 없는 체 친척집을 옮겨 다녔다는 것이다.

옮겨 다니면서 외로웠을 때 유산하셨을 때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에 엄마 없이 어떻게 버텨냈을까라는 큰 고모의 말에 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본인이 더 힘들고 속상하고 외로웠다는 사실을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내 의지와 다르게 세상을 혼자 살아야 했고 그럴 수밖에 없던 할머니의 고생은 차마 상상할 수 도 없다.

떠나보내기 전에 알았더라면 온 힘을 다해 아주 뜨겁게 안아드릴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에 할머니의 힘 없는 낯선 손을 정말 살살 잡아드릴 수밖에 없었던 게 나는 영영 후회가 될 것 같다.


내 인생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봤던 시기에도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고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노력하면 된다고 조심스레 말을 걸어줬던 게 생각난다.

세상 예민하고 민감한 시기여서 그랬는지 모든 어른이 의심스러웠고 어떤 말을 들어도 다 부정적으로 인식이 되었고 다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기에도 할머니란 사람 자체에서 진정한 따뜻함을 느꼈는지 모든 어른이 미웠는데 할머니를 미워했던 적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 기억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랑했던 할머니를 자주 뵈러 가지 못했다.

아빠가 같이 뵈러 가자고 할 때마다 나는 일이 있다며 피하고 지냈다.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변명일 수밖에 없지만 복잡한 가정환경을 탓하겠다.

나 그리고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 바에 아예 그 자리에 내가 가지 않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이혼하시면서 나는 엄마를 따랐고 가끔 만나는 아빠는 엄마 욕하느라 바빴고 그런 아빠가 너무 미워서 내 의지로 아빠 성에서 엄마 성으로 성까지 바꿔버렸으니 호적상에서 봤을 때 내가 우리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를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앞으로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은 추위보다 독하게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전화할 때마다 먼저 힘든 일은 없는지 속상한 일은 없는지 내 걱정부터 해주고 뭘 듣지를 않아도 무조건 잘하고 있다고 기특하다고 해줬던 따뜻한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정작 본인이 더 힘들고 속상하고 외로웠으면서 따뜻하고 밝은 사람일수록 그만한 아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 나는 왜 몰라줬을까..

할아버지 떠난 뒤에 또 혼자 외로웠을 밤을 몇십 년이나 보낸 할머니의 밤은 얼마나 긴 밤이었을까..

몰라줘서 미안해요.

내가 속상하고 마음 아프다고 우리 할머니까지 멀리할 필요는 없었는데..


할머니!! 내가 많이 사랑해!!! 알고 있었지???

말을 못 했지만 정말 정말 사랑하고 많이 보고 싶어!!!!

하늘에서 내가 아등바등 사는 모습 재미있게 보고 있어 줘요.


이 글을 쓰면서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눈물이 다 말리고 빨개진 눈도 진정되었을 때 여전히 그립고 슬퍼하는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의 5살 생일 사진이 놓여져 있던 할머니 베갯머리

그러니 나 볼 때마다 언제 이렇게 컸대? 하는 말이 나오지 반칙이야! 하며 오랜만에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

이렇게라도 남아있으니 얼마다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