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보다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다워졌는가?
제법 어린 시절의 비디오 대여점은 보물 상자가 가득한 꿈의 공간이었다. 앞장서서 비디오 키드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유년 시절의 공상은 대개 이 때 본 비디오의 내용으로 점철되곤 한다. 그리고 이 공상의 편린은 살면서 문득, 갑자기 떠오르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모임에 있던 A의 끔찍한 자기자랑을 뒤로 하고, 하소연을 위해 끔찍하게 맛없는 파스타를 앞두고 앉아 피클 대신 A의 험담으로 짭짤함을 보충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한 척 하나만 점수를 재면 세계 제일이라는 이야기가 문득 스쳤고, 그 순간 두뇌에 점수를 매기는 모티브를 어디선가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그 작품이 어릴 적 비디오로 보았던 전대물. '평화의 전사 라이브맨'(원제 : 초수전사 라이브맨)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특촬물 혹은 전대물이라 부르는 장르는 생각보다 유구한 역사가 있는 장르다. 대개 1년에 한 편씩 제작하며, 중간에 잠깐의 휴식기를 제외하면 매년 제작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35년 기념으로 여태까지 등장한 모든 전대의 힘을 이용해 싸우는 전대물이 있었을 정도인데, 이만하면 이 시리즈의 저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내에는 '대영 팬더'에서 몇 작품을 수입한 게 비디오로 큰 히트를 쳤는데, '후뢰시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따위가 그것이다. 이후에 가글레인저나 체인지맨 등도 꾸준히 들어왔다는데, 당시 영세한 비디오 가게엔 그런 작품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점차 인기가 사그라들었다고 기억한다.
어쨌든, 그날 기억한 작품은 평화의 전사 라이브맨이라는 작품이다. '친구들이여, 너희들은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했는가?'라는 내레이션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과학 아카데미아를 중심으로 친구들이 적으로 등장하는 꽤 신선한 작품이었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몇 편이나마 다시 보며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수 있었다.
라이브맨의 무대는 과학 영재들을 모아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 과학 아카데미아다. 이곳은 경쟁을 통해 영재들만 모이는 곳이었는데, 이곳에서도 학생들끼리의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수재인 켄지는 교육방식에 불만을 갖고, 친구인 루이, 고와 함께 아카데미아를 빠져나와 대교수 비아스가 있는 무장두뇌군에 투신하게 된다.
아카데미아를 나오며 친구 둘을 총으로 살해한 이들은 무장두뇌군 볼트의 간부인 닥터 겐푸, 닥터 마젠다, 닥터 오브라가 되어 돌아오고... 아카데미아에 남아 있는 학생 일부는 이들과 싸우기 위해 생명을 지키는 전사 라이브맨(Liveman)으로 화한다. 당시의 전대물은 꽤 심각한 주제를 다룬 경우가 많았는데, '라이브맨' 역시 당시 만연하던 무한 경쟁주의를 비판하고 있었다.
경쟁에 앞서 인간을 뛰어넘었다고 자조하던 악의 간부들은 간부가 되어 무엇을 했는가? 대교수 비아스 밑에서 누가 먼저 '천 점 두뇌'가 되는지 경쟁했을 뿐이다. 그리고 천 점 두뇌가 되면 비아스에게 두뇌를 빼앗기게 될 뿐. 가장 처음에 버림받은 고를 제외하면 남은 악당들은 결국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평생 공부를 한다는 대교수 비아스나 간부들(닥터 겐푸, 닥터 마젠다, 닥터 오브라 등...)을 보면 '공부를 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작품이 1988년에 출시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꽤 선구적인 주제로 아동 전대물을 만들었다. 그러부터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는가? 우리는 교육을 흔히,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인격을 완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27년 전에서 묘사한 과학 아카데미아는 더욱 심해진 형태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교육은 인격을 함양하기보다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렸고, 경쟁은 더욱 심한 형태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우리는 경쟁에서 이겼으나, 사실은 또 다른 경쟁 구조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닐까? 마치, 무장두뇌군의 간부들처럼 말이다.
1988년에 바라본 무한 경쟁사회는 사람 본래의 인간성을 빼앗고 인간의 가치를 물질적으로 환원하여 서열화하는 잘못된 사회였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을 지키는 전사인 라이브맨이 이 사회에 필요했던 것이다. 라이브맨은 악당을 감화시키려 노력해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였으며 나아가서는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는 생명 중시 사상을 주장했다.
라이브맨은 끝내 모든 친구를 감화하진 못한다. 처음에 내쳐진 고를 제외하고 켄지와 루이는 인간을 버리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뒤늦게 후회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친구들과 처절한 싸움을 벌인 끝에 라이브맨은 무장두뇌군을 격파하고 대교수 비아스를 해치우게 된다.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라이브맨이 힘들게 지구를 구했으나, 27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그 당시보다 더 어두운 사회가 되어버려 씁쓸할 뿐이다.
1. 모든 전대물을 총 집약했던 해적전대 고카이져(국내명 파워레인저 캡틴포스)에서 라이브맨 옐로 라이온으로 등장했던 오오하라 죠가 등장한다고 한다. 해적전대 고카이져에서 과거 출연 배우가 나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한다.
2. 무장두뇌군 볼트의 수장인 대교수 비아스 역은 현재 성우로 활동하고 있는 나카타 죠지 본인이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 기로로 역을 맡은 성우.
3. 2.의 나카타 죠지는 초신성 플래시맨(국내명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에서 사-카우라라는 에일리언 헌터의 대장으로 등장했었다. 여러모로 악역 전문.
4. 평화의 전사 라이브맨 오프닝은 처음 들었을 때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들어도 나름 괜찮다.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할 것. 가장 처음에 나오는 "친구들이여, 너희들은 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야만 했는가?"가 백미.(https://www.youtube.com/watch?v=vnprusGu2i0)
초수전대 라이브맨 일본 홈페이지(http://www.super-sentai.net/sentai/live.html)
초수전대 라이브맨 DVD 홈페이지(http://www.toei-video.co.jp/DVD/liveman.html)
나무위키 - "초수전대 라이브맨"(https://namu.wiki/w/초수전대%20라이브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