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사키엘의 조우를 기념하여
어쩌다 보니 첫 글을 이렇게 적게 되네요...
블로그(http://reinia.net)와는 또 다른 글을 적어보는 공간으로 삼아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 글은 가벼운 신변잡기 글입니다.
사해문서에 따르면, 서기 2015년 인류는 사도라는 존재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인류는 제3 동경시로 향하는 사키엘(Sachiel)을 조우하고 전투를 벌이게 된다. 그리고 소년은 신화가 되기 위해 힘찬 발걸음... 은 아니고 반강제로 범용 인간형 결전 병기, '에반게리온(Evangelion)'에 탑승하게 된다.
1995년 TV 도쿄를 통해 방영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에반게리온)은 기록적인 흥행을 해서 당시 제작사인 가이낙스를 빚더미에서 구제해준 작품이다. 과하게 꼬인 설정과 당시를 고려했을 때 파격적인 연출과 음울한 설정, 결말은 많은 해석을 불러왔고 관련 논문이 쏟아질 정도였다고 한다.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성공한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에반게리온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사람이 많다. 단적인 예로 필자가 그렇고 말이다.
TV판이 끝나고 수년이 지나 2000년쯤, 필자는 그림을 즐겨 그리는 친구와 죽이 맞아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어느 날 문득 친구가 건네준 금색 CD 한 장이 필자의 인생 궤도를 아득하게 바꿔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나 근묵자흑, 맹모삼천지교 따위의 격언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인지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로봇 나오는 재미있는 만화'라는 이야기에 방과 후 학원을 가기 전 밥을 먹으며 틀었던 다이요-요덴 CD 속 동영상에선 로봇이라 하기에 낯선 괴생명체가 등에 케이블을 매달고 날뛰는 만화가 들어있었다.
우유부단해 보이는 남자애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괴물보다 괴상하게 생긴 로봇에 타서, 뭔가 좀 싸우나 했더니 괴물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은 사이에 로봇이 더 괴상하게 변해서 괴물을 신나게 두들겨 패다가 십자가 모양으로 폭발하는 애니메이션은 참 뭐랄까... 굉장했다!
그렇게 시작한 에반게리온은 충격과 공포의 TVA 엔딩을 보고, 다시 <사도신생>(당시에는 Death & Rebirth로 알고 있었다.)과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고 더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순수한 중2병 학생에게 에반게리온은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뭔가 대단한 걸 알게 되었다는 지적 허영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시작한 애니메이션 감상은 성인이 되고 차츰 수그러들었지만, 당시에 접한 서브컬쳐는 지금까지 남아 쓸데없는 잡지식이 되어 기억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에반게리온은 필자 인생에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필자는 주인공과 꽤 심각하게 동일시를 했고, 주인공의 성장과 필자의 정신도 성숙해졌으나 그 과정이 다소 파괴적이었다는 점은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주변에 폐를 끼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든다. 그리고 흑역사의 서장을 웅장하게 시작하기도 했고 말이다.
다양한 서브컬쳐를 접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고, 어떤 주제에 깊이 탐구하는 성향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로, 이러한 성향은 나아가 오덕의 덕(德)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겠다 하겠다. 인성의 덕(德)을 먼저 갖춰야 했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는 잠시 미뤄두자.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현재도 마음에 드는 분야가 생기면 파고드는 성향은 깊게 자리매김했다. 그러니 차마 머글, 일반인이란 말은 못하겠고 필자는 스스로 휴덕 나부랭이 정도로는 소개할 수 있겠다. 인류와 사도의 조우를 기념하여 적은 이 글은 한편으로 필자가 어떤 글을 적을 것인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동안 접한 다양한 문화활동을 웬만하면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한다.
블로그와는 또 다른 문체, 또 다른 주제로 글을 쓰는 중이라 한동안 문체가 들쑥날쑥하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부디 즐거운 글이 되었으면 한다. IT를 중심으로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도 많이 찾아와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