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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니아 Aug 21. 2015

선생님, 악기가 하고 싶어요.

소질 없는 리듬게임의 역사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게 있대.
그리고 그게 일치하면 행복한 거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던 친구 J는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고, 내가 원하는 일은 이게 아니었다고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방구석 백수인 내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다물고 조용히 쓰디쓴 소주를 마셨다. 술 값 내겠다는 사람을 굳이 화내게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시간이 지나서 그때 취한 내가 또 뭐라고 개똥 같은 헛소리를 지껄였는지, 술 값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J가 한 말은 쓸데없이 기억 한구석에 남았다. J의 씁쓸한 인생을 담은 현학적 읊조림을 바탕으로 고작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려니 참 민망하지만, 어쩌겠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필자도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게 있다. 그리고 그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대표적인 게 오늘 소개할 리듬 게임이다. 리듬 게임과 나의 악연, 아니 음악과 나의 악연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역사를 짚어가며 나와 리듬 게임을 적어보고자 한다.



체형과 악기

   악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체형은 분명히 있다. 대표적인 게 손 크기. 손가락이 길쭉길쭉하면 아무래도 악기를 다루는 데 능숙할 수밖에 없다.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지만, 필자의 손은 악기를 다루기에 영 적절치 않다. 남자 손 치고 손도 작고 손가락도 짧아서 도통 어떤 악기를 연주하려 해도 신체적 제약이 뒤따른다.


   성인이 된 지금도 손을 쫙 피면 한 옥타브를 겨우 누를락 말락 한 정도의 짧은 손은 기타 코드를 잡을 때 짧은 손이 닿지 않는다. 게다가 리코더나 오카리나는 손으로 구멍을 야무지게 잡지 못해 소리가 새며, 단소와 플룻은 이상하게 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상기한 모든 악기를 배우려 노력해봤다는 점이다.


   꽤 어렸을 적부터 필자의 악기사랑은 계속되었는데, 국민학교 1학년 때 필자 스스로 음악 학원에 보내 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일을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어머니께서 회상하시곤 한다. 하지만 이 사랑은 오직 나의 짝사랑으로만 끝날 뿐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는 리코더를 제대로 못 불어 혼자 방과 후까지 남아서 연습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낙제점을 받은 역사가 있다. 여름 특강으로 단소를 배웠지만, 선생님은 자세는 좋으나 이상하게 소리를 못 낸다며 포기한 역사도 있다.


   플룻 역시 마찬가지. 소리를 제대로 못 내서 소리 내는 것만 주야장천 연습 끝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기타는 친구에게 배우다 친구가 성질을 내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


오카리나, 필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흙으로 구운 알토 오카리나였다. 출처는 하단에 표기


   성인이 되어 오카리나를 선물 받아 간신히 소리를 내는 것. 그리고 피아노를 성인 때 다시 조금 만진 게 그나마 건진 유일한 성취인데, 피아노를 다시 잡으면서 필자가 박자를 잘 못 맞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음악 실기 점수가 엉망인 이유를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리듬 게임의 역사

   악기를 잘 다루지 못하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느낌을 받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시작한 게 바로 리듬 게임의 세계였다. 그리고 흑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리듬 게임이 어떤 의미로 악기 연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기에...(...)


1) BM98

BM98, 추억이 솟구친다.


   기억 속에 가장 먼저 시작한 게임은 BM98이라는 게임이었다. BM98은 Be-Music의 약자로 당시 KONAMI의 비트매니아(Beat Mania) 형태의 리듬 게임을 PC에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프리웨어 리듬 게임이었다.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는 BM이 비트매니아의 줄임말인 줄 알고 비트매니아를 해봤다는 생각을 했었으나, 실제 비트매니아는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볼 수 있는 게임이라는 걸 훗날 깨닫게 되었다.


   BM98의 실행 파일 자체론 아무런 음악도 플레이할 수 없었는데, 곡 데이터 파일인 BMS 파일을 받아서 폴더에 넣어야 해당 곡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BMS(Be-Music Script)는 개인이 만들 수도 있었는데, 음악 파일을 가지고 꽤 장시간의 노가다를 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BMS는 당시 PC통신 게시판(BBS)에서 받을 수 있었는데, 음악파일을 포함하는 파일이다 보니 용량이 상당했고 몇 곡 내려받다가 부모님의 등짝 스매싱을 감수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テーゼ)


   S, D, Z, X, C, 그리고 Shift와 Space키 가지고 꼼지락거리면서 꽤 열심히 플레이했었는데, 나중에 2인 플레이를 혼자서 플레이하는 걸 보고 리듬 게임의 벽을 처음으로 깨닫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왜색이 짙은 노래를 이때 많이 접했다. 가령 X-JAPAN의 노래나 아직 접하지도 못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OP인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テーゼ)는 이 당시에 접해 인상 깊은 노래로 남아있다. 그리고 후에 이 소년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덕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2) DDR(Dance Dance Revolution)

Dance Pad,위 사진은 PS판이나, 컴퓨터에 연결할 수 있는 제품도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다음에 접하게 된 게임은 DDR이다. BM98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접했던 게임이지만, 실제로 플레이는 BM98이 좀 더 일렀으며, 또 오래 플레이했다. DDR은 조금 금세 사그라들었는데, 이유는 필자의 뻣뻣한 팔다리 덕분이었다. 출시 당시엔 꽤 인기 있던 리듬 게임이다. 당시 DDR을 대표하던 곡인 Butterfly가 여기저기 울려 퍼지고, 가정용 PC가 보급되면서 PC를 구매하거나 가전 제품을 얼마 이상 구매하면 DDR 소프트웨어와 전용 발판을 끼워서 주기도 했었다.


SMILE.dk - Butterfly


   필자의 친구가 DDR을 발판과 함께 받아서 수 주 동안 즐겁게 즐겼지만, 우리나라 주거환경이 주로 아파트였던 통에 아랫집의 항의와 함께 DDR 발판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그 대안으로 키보드 방향키를 가지고 플레이를 했었으나, 그때는 이미 게임이 좀 시들해져 버렸던 터라 금세 플레이를 그만두게 된다. BM98은 다양한 곡을 계속해서 추가할 수 있었으나, DDR은 그러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3) 펌프 잇 업(Pump It Up)

지금은 남미에서 인기를 끌고 국내로 역수입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DDR의 아류라고 생각했던 펌프 잇 업이 다음으로 접한 리듬 게임이었다. 잘 나가는 오락실에 한 두개씩 비치되다가 나중엔 펌프방이라고 해서 펌프만 비치해두고 구색 맞추기로 인형뽑기, 그리고 500원을 넣으면 구슬에 들어간 껌이 오만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마치 골드버그 장치 같은 껌뽑기 같은 게 비치되어있는 곳이 생길 정도였다.


   당시 펌프는 선풍적인 인기였는데, 특히 유명했던 게 온국민이 다 알만 한 곡인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누구나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곡이었고, 음악이 좋다고 생각해 음악 파일을 구해서 듣기도 하였다.

베토벤 바이러스


   또한,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노래는 '그녀는 피자를 좋아해'였다.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해서 다들 모험감으로 도전했던 것 같다. 돈이 없어 땅바닥에 화살표만 그려두고 채보따라 연습하던 기억이 있었던 걸로 보면 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피자를 좋아해'. 내 취향의 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펌프도 그리 오래 하진 않았다. 우선 필자가 펌프를 지독하게 못했다. 채보를 봐도 발이 따라가지 못해서 매번 엉거주춤하게 있다가 비싼 돈만 날리기 일쑤였고, 펌프장에 오려면 기본적으로 펌프 실력이 좀 받쳐준 다음에 가야 하는 진입장벽이 생겼으며, 점점 노는 형들이나 노는 누나들이 펌프장에 모여 펌프를 섣불리 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구색 맞추기 껌뽑기에서 껌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지켜보고, 껌이나 질겅질겅 씹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4) EZ2DJ

EZ2DJ 로고

   EZ2DJ는 접하긴 접했으나 한편으로 접하지 못한 게임이다. 당시에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는 것도 있었고 아케이드도 있었지만, 예전에도 지금에도 노트가 급속하게 떨어져서 필자의 동체시력으론 맞추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허술한 동체시력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EZ2DJ(이제는 EZ2AC로 개명하였다고 한다.)를 플레이하는 사람을 보면 저게 보이냐고 꼭 물어보고 싶다. 정말 간단히 플레이해보고 바로 플레이를 포기한 게임. 연습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은 게임이다.


5) 캔뮤직

캔뮤직, 후에 알았으나우여곡절이 많은 게임이었다고 한다.

   동생이 먼저 하던 걸 발견하게 된 게임. 레몬볼이라는 사이트에서 할 수 있었던 캔뮤직이다. 특히 곡 수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음악을 올리면 자동으로 악보를 만들어주는 시스템 덕분이었던 것 같다. 역시 오래하진 못했는데, 당시엔 컴퓨터를 많이 접할 수 없는 환경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캔뮤직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A Little Fairy Tale'이라는 곡인데, 원곡이 무엇인지 몰라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이후부터는 성인이 된 다음에 접한 게임이다. 양이 매우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이고, 다음에 이어서 작성해보도록 하겠다.



연재 글 확인하기

(1) 선생님, 악기가 하고 싶어요.

(2) 나 그래도 체르니까지 친 남자야.
(3) 리듬게임과 나



출처

오카리나 이미지 - Stepla at German Wikipedia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Ocarina.jpg

BM98 메인 이미지 - H@CK, [고전게임] BM98 (비트매니아) 다운로드 : http://hack.pe.kr/319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テーゼ) BMS 이미지 - Jokersmile, BM98 잔혹한천사의 태제 BMS : http://jsjabtang.tistory.com/entry/BM98-%EC%9E%94%ED%98%B9%ED%95%9C%EC%B2%9C%EC%82%AC%EC%9D%98-%ED%83%9C%EC%A0%9C-BMS

DDR Dance Pad 이미지 - PiaCarrot, Controller for Dance Dance Revolution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DR_Controllers.jpg

Pump It Up 이미지 - Javier Mediavilla Ezquibela, Pump it up championship in IV Getxo Comic Con.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ump_it_up_2.jpg

EZ2DJ로고 - 나무위키, "EZ2AC" : https://namu.wiki/w/EZ2AC

캔뮤직 이미지 - 나무위키, "캔뮤직" : https://namu.wiki/w/%EC%BA%94%EB%AE%A4%EC%A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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