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을 울릴 때가 있다.
그들의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자신이 된 듯한 만족감을 얻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기를 기대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책 속의 글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작은 함정이 숨어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러한 대화는 때때로 우리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간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거나, 평소 관심 없던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신경 쓰게 만든다. 이는 그 사람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말을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믿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 말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거나, 불안을 잠재우거나, 혹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누군가의 말에 영향을 받아 조금씩 자신을 바꿔간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이라면 이는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이런 일이 비단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AI와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함정을 경험한다. AI는 우리의 질문에 자연스레 답하며,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우리를 설득한다. 친절하고 논리적인 어조는 신뢰를 주기에 충분해 보이며, 항상 긍정적인 태도와 도덕적인 기준으로 답변하는 듯 보여 우리는 어느새 그 답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AI도 가끔은 잘못된 답변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답변하거나, 판단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도 마치 확신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오류를 "환각" 또는 "할루시네이션"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답변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무심코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 간의 가스라이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자신이 믿고 싶은 말들은 그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신뢰를 기반으로 무심코 받아들인 말들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독초처럼 자라난다. 사람의 마음이 약해서일까, 아니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힘든 것일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쉽게 노출되고 빠져든다.
때로는 내가 믿고 있는 이 말이 정말 맞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러한 작은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AI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건넨 질문에 답변이 돌아올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대신,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저 친절하고 논리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신뢰를 내어줄 수는 없으니까.
대화는 단순히 말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조심스레 엮어가는 섬세한 과정이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상대는 신뢰를 얻기 쉽지만, 그 신뢰가 언제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