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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Oct 03.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15

비밀



비밀인데,

너에게만 알려줄게.






언젠가 양화대교를 걸어서 건넌 적이 있었어.

그 길을 걸어서 건너는 건 매우 오랜만이었지.


그날 밤은 유난히 시원하고 청량한 날씨였어.

그런데 나는 그런 날씨조차 너무 원망스럽더라.


그때 내 기분은......

그때 내 상황은......

날씨를 즐길 만큼의 작은 여유조차 없었으니까.


아니야.

나쁜 생각으로 거기를 갔던 게 아니야.

그저 차비가 없어서 걷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한강을 건너게 된 거지.


다리의 중간께 왔을 때 문득 멈춰서 한강을 내려다보고 싶더라.

그래서 난간을 붙잡고 가까이서 내려다봤어.



혹시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뭔지 알아?


등 뒤로 많은 차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어둠 속에 찰랑이는 강을 넋 놓고 보고 있으니

강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너무도 생생했지.


그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이제 눈만 잠시 감으면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어.

엉망으로 꼬여버린 실타래를 끊어낼 수 있어.


깊고 어두운 강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더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지.

그럴 감정도 용기도 없었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시 뒤돌아서 집으로 갔지.


두 시간을 더 걸어서 도착한 내 방 문 앞에 작은 쪽지가 붙어있더라.

밀린 월세가 보증금을 넘었으니 퇴실해달라는 정중한 부탁.



그날부터 바라고 또 바랬어.


제발 도와달라고.

아직은 살고 싶으니 누구라도 제발 좀 도와달라고.


날 도와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버티고 버텼지.


잘 곳이 없어서 지인 사무실 바닥을 빌렸어.

차비가 없어서 매일 10킬로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고.

은행에 불려 갈 때면 죄송하다는 말을 백번씩 해야 했지.


하루를 라면 한 개로 때우는

초라한 내 모습에 친구들을 만날 용기도 안나더라.



매일같이 외쳤어.


도와줘.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아직 10년이 채 안된 일이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웃으며 지내고 있지.


나를 괴롭히던 것들과 하나씩 하나씩 부딪히며 살았더니 웃는 날도 즐거운 날도 생기더라.




그거 알아......?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간 동안

나를 믿어준 사람.

내가 쓰러지지 않게 잡아준 사람.


지칠 때는 괜찮다 다독여주고

힘들 때는 즐거운 척 웃어주고

괴로움에 펑펑 울 때면

같이 울어준 사람.




그건 바로 나였어.

돌아보니 그게 바로 나였더라.


그러니 너도 너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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