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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Nov 10. 2022

밤에 듣는 이야기 #26

지하철



덜컹덜컹.

끼이익-.


정거장에 도착하는 지하철은 등을 기대어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무거운 두 눈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 창동역



아직 도착까지는 몇 정거장이 남아있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졸음에서 깨기 위해 천천히 목과 어깨를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며 지하철 안을 둘러보니 몇 명의 승객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닐 텐데, 적막한 열차 안을 보니 뭔가 쓸쓸함이 느껴졌다.


의자에 앉아 자면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아이팟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 8시 37분



열차 한 구석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통화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이 기분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쓸쓸한 건 지하철의 분위기가 아니겠지.

쉴 틈 없이 일에만 매달려 사는 나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


회사에서 월급이 밀리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무래도 내 생활은 그만큼 갑갑하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녁에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다가 과외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물론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 맞지만 나는 다른 문제로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저녁에 퇴근하고 부천에서 상계까지 이동하여 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막차를 타고 집에 가면 새벽 1시가 된다. 이 생활을 두 달이나 하고 있으니 몸이 제대로 버틸 리가 없었다.


게다가 과외비로 받는 돈에서 차비와 식비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평소에는 딱히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쓸쓸하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한 지하철은 어서 일하러 가라는 듯 출입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터벅터벅 걸어 나가며 한 숨을 내쉬었다.



'휴...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삶을 살고 있겠지.'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의 투박한 소리가 내 귀를 울려오고 있었다.






덜컹덜컹.

끼이익-.


정거장에 도착하는 지하철은 등을 기대어 졸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큰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아주 오래된 기억. 살아온 시간 속에 묻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던 그때가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그 순간에 살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려 어두운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그때의 노력들은 보상을 받은 걸까?

그 시절의 내가 그린 모습에 얼마나 다가섰을까?



천천히 목과 어깨를 움직이며 일어나 걸어갔다. 퇴근을 환영하는 열차 문이 열리고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귀갓길을 재촉했다.


터벅터벅.


몸을 타고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는 예전과 같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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