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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Jan 01. 2023

지켜야 한다.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숨소리조차 죽인 채로 숨어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숨소리를 죽이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쿵! 쿵! 쿠쿵!


문 밖에서는 악마 같은 존재들이 집안을 헤집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이면서 아직 몸을 피하지 못한 내 가족들을 무자비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다행히도 그것들의 눈을 피해 방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지만, 분명 머지않아 들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내 심장을 더욱 조여 오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저 악마들은 사라진 나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알았다면 이 문 넘어 거실은 더욱 큰 비명소리와 소란이 일었을 테니까.


컥!

아아악!!!


쿵! 쿵! 쿵!


비명소리에 이어 굉음이 들려왔다.

형이 당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형을 애도할 여유조차 없었다. 저 악마들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내 손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조차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단지 그들이 찾지 못하도록 이 물건을 숨겨둘 것인지, 저 작은 창을 열고 탈출을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하지...? 저 창으로 도망갈 수 있을까?'



어릴 때 자주 들락거리던 창문이었지만 이제는 방범창살이 붙어있어 그것을 떼어내기 전에 악마들에게 잡히고 말 것이다.


쿵쿵!!

쾅! 쾅! 콰쾅!


악마들이 이 방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차. 늦었구나. 빨리 숨겨야 해. 어디에 숨기지? 장판 아래? 책장 뒤? 어디가 안전하지?'



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심장은 폭주한 야생말처럼 미친 듯이 뛰고 숨이 가빠온다. 곧 있으면 저 문을 부수고 나를 찾아낼 것이다. 그럼 모든 게 끝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은 물건을 숨길만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긴장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것 만큼은 기필코 빼앗겨서는 안 된다.



쾅ㅡ!


"후우. 후우."



두 눈에 안광을 뿜으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악마가 숨을 내쉬고 있다. 그리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천천히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 나 역시 이곳에서 옥쇄할 각오로 이겨내야만 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꼭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 마치 사명처럼.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물건을 천천히 뒷 주머니에 넣고 그 악마들을 맞아 싸울 준비를 했다.


그래, 지켜야만 한다.


저 귀여움으로 무장한 조카들로부터 내 핸드폰을 지켜내야만 한다.



새해 첫 날.

이길 수 없는 존재들에게 빼앗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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