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햇빛과 바다의 만남

by 김지원

바다를 사랑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무한한 조각들로 구성된 물결이 저마다의 생의 알리고자 부딪히며 밀려온다. 그것은 내게 왔다가 홀연히 떠났다. 파도는 해변의 끝자락에서 소리만 남기고 떠나는 것이 운명이다. 잡을 수 없는 운명. 그것은 아름다움이고 애처로움이며, 삶과 죽음을 머금은 기억들이다.


이른 새벽이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우리는 알람을 맞추고, 그 기적을 마주하기 위해 잠에서 달아났다. 일출 명소란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 바다는 세상의 모든 것에 거울이 된다. 비추고 보여주고 반영해 준다. 푸른 바다인지 푸른 하늘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곳에서 날개 달린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친다. 가볍고 활기찬 모습으로 아침놀을 더 풍요롭게 하는 그것은 우리를 축복하는 천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황홀경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육체는 본능을 이길 수 없지만 정신은 일출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도록 시선을 허락했다.


해와 바다와 파도. 이것들은 세계 자체이며 인간이 삶을 쟁취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각각의 형태로도 가치가 있고 서로에게 새로운 힘을 건넨다. 바다에 물들기 시작한 천상의 빛은 모든 경계가 부서지듯 다시 지상의 빛으로 전환된다. 그것을 목격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이다. 그녀와 내가 사랑을 나눈 것도 이 현상과 닮아 있다.


알랭 드 보통이 ‘사랑 예찬’에서 만남을 기적이라 관계를 재발명이라 말한 것은 실로 놀랍다. 당연하게 느껴지는 생각과 사유를 담백하게 써내는 일은 깊은 시간에 몸을 내맡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기적적으로 만나 이후 성취하는 것이 개별적인 삶의 흐릿함이라면, 그것은 다시 관계 안에서 발명되는 삶으로 전환된다.


사랑 앞에서 정의를 내리는 것이 오만임을 이 푸른 바다를 보며 배운다. 그것은 현상이다. 보이는 것이지 사실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빛이 깃든다면, 완전한 사랑에 대한 논리는 무너진다. 오랜 역사 속에서 사랑은 완벽하고 완전한 것이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사랑이 현상처럼 무너지고 부서지고 새로 창조되는 것이라면, 모두를 묶을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사랑을 둘에게 맡겨야 한다. 서로 다른 삶을 지속해 온 둘이, 각자의 삶을 무너뜨리고 부서뜨리고 새로 창조해 내는 것—그것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계 속의 사랑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