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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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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이모 Oct 14. 2017

널 사랑하지 않아

잔인하지만 명쾌한 그 말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게 전부야 

이게 내 진심인 거야

널 사랑하지 않아 


이 노래는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무슨 말을 전하려는 것인지 정확하게 전달된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데는 다른 이유는 없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미안할 것도 없다. 군더더기 같은 변명 없이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널 사랑하지 않아. 


경북 선산군 고아면 관심리에서 태어난 박명이는 박수무당이자 한량이었던 아버지 곁에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 재미 삼아하는 것 치고는 명이의 소리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명창'이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고 결국 5남매의 맏딸인 명이를 소리선생의 제자로 들여보낸다. 그리고  집에서 부르던 '명이'라는 이름 대신 '녹주'라고 이름까지 바꿔주었다.


'박녹주'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이후 먹고 자는 시간 말고는 소리만 하면서 지내다 보니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아버지의 욕심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녹주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기생 수업을 받아야 했고 권번기생이 되어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그녀의 구성진 가락에 마음을 빼앗기는 남자들은 점점 늘어갔는데 김유정이라는 청년도 그중 하나였다. 


강원도에서 유복하게 자라다가 어머니를 여의고 가세도 급격하게 기울면서 모든 것이 힘들었던 김유정에게 유일한 행복과 위로는 그녀뿐이었고,  오로지 박녹주만 보이고 박녹주만 들리면서 혼자만의 사랑은 불타올랐다. 

작가를 꿈꾼다는 김유정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장문의 연애편지를 써 보냈고, 집 앞에 찾아와 무작정 기다리는 날도 허다했다. 어떤 날은 답장을 해달라며 대성통곡을 했고 어떤 날은 선물을 보냈지만  여전히 그녀가 곁을 주지 않자 혈서를 보내 겁을 주기도 했다. 훗날 "봄봄" "동백꽃"이라는 명작을 남긴 작가지만, 그 시절에 녹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라]는 공갈협박이 가득했고, 그 정도로는 부족했는지  그녀가 타고 가던 인력거에 몽둥이를 들고 뛰어들었던 걸 보면 스물한 살의 김유정은 사랑에 눈이 멀었었나 보다.  하지만 김유정이 사랑에 미쳐 날뛰거나 말거나 녹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스물세 살의 녹주는 그때 이미 다른 남자의 소실이었고, 소리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 박녹주! 당신 왜 내 마음을 안 받아줍니까. 내가 가난해서 무시하는 거요? 

- 사랑하는데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 그럼  내가 당신보다 어려서 무시하는 거군요?

-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 그럼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  가난이나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제 마음이 가질 않을 뿐입니다. 


명쾌한 답변이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가질 않습니다.

즉, 소리꾼 박녹주가 김유정에게 노래로 들려주고 싶은 그 말.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내 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니. 김유정은 얼마나 슬펐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갖는다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구나. 



* 남의사랑, 한 줄 요약 

: 김유정 혼자 박녹주를 미친 듯이 좋아하다가 거절당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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