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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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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이모 Nov 01. 2017

잊지 말기로 해

쉬운 이별은 없다

남자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은 여자의 얼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요, 사랑에 연연하는 사람도 아니니, 여자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일은 없다고 늘 이야기했다.  송도에 아주 빼어난 여인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그녀를 만난다 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친구들이 그 말을 믿지 않자 서슴지 않고 내기까지 한다. 


- 내가 딱 한 달만 그 여자를 사귀고 돌아오도록 하지. 한 달이 넘었는데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자네들이 나를 사람이 아니라고 놀려도 좋네!


그렇게도 자신 있어 하는 남자 ‘소세양’과 뭇남성들의 가슴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그녀 황진이’가 만났다.  50이 훌쩍 넘은 소세양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집안에서는 효자였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도 잘 짓고  명필이며 사회적으로도 승승장구하며 입지를 굳힌 상태였고 황진이 그에 비해 모자랄 것이 없었다.  그녀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총각까지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으며 그 당시 여성들과는 다른 가치관과 뚜렷한 소신이 있고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통하다 보니 그 어떤 남자를 만나도 쫄지 않는 당당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토록 잘난 남자와 잘난 여자가 만나 약속대로 꼭 한 달만 지내고 헤어지기로 했는데, 짐작컨데 서로  잘 통하는 두 남녀가 만났으니 한 달 시간은 참으로 재밌고 유쾌한 시간이었을 듯하다. 

끝이 정해진 사랑이라 더 진하고 애틋했을 30박 31일의 일정이 끝나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이별을 앞둔 황진이가 소세양을 위해 시 한수를 지어 조용히 읽어주었는데, 그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내일 아침 당신을 보내고 나면
그리운 마음은 물결처럼 끝이 없겠죠. 


30년의 나이 차이에도 상관없이 뜨겁고 애틋한 밤과 낮을 보내며,  각자 알고 있고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남자가 내일 아침이면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자리에 혼자 남겨질 황진이의 마음. 평범한 여자처럼 살지 못했던 걸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그동안 많은 남자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헤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이별이 수월 할리 없다.  그가 떠나고 나면 그리운 마음이 물결처럼 끝없이 자신을 휘감을 것을  예감하며 슬퍼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쿨하게 돌아서겠다고 다짐했던 소세양의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황진이가 소세양을 보내면서 쓴 시의 앞부분을 보면 그때가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국화꽃 위에 내려앉던 서리가  그녀 마음에도 내리게 생겼다.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던 이별 앞에서 더 이상 무어라 할 말도 없는 두 사람이 마지막 산책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                     

이렇게 이별은 다가와 나를 아프게 해

난 그대 안에 가슴속에 머물고 싶어
이제 우리 서로의 길을 떠나가야만 해
흔들리는 작은 어깨 두 눈에 흐려져


우리의 만남은 이제 끝나지만 
그대는 영원히 나의 가슴에 남아
이대로 헤어지지만, 우리 사랑을
우리 사랑을 잊지 말기로 해

-  이문세 이소라 [잊지 말기로 해]


"내가 한 달에서 하루라도 더 지체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놀려도 좋소!"라고 친구들과 자신만만해하던 소세양이지만 그동안 정을 나누었던 여인에게  "한 달이 다 되었으니, 미스 황. 이제 그만 세이 굿바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 것을 각오하고 그녀 곁에 얼마를 더 머물렀다고 한다. "얼마"의 기간이 하루였는지, 일주일이었는지 한 달인지 알 수 없지만, "영원히" 머문 것은 절대 아니다. 결국 그는 떠났고 기록된 바에 따르면 소세양은 황진이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한다. 

사진 / Pinterest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대? 결혼을 한건 아니잖아?  애 낳고 살아보면 다를걸?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그 여자 기생이잖아? 어쨌든 남자는 결국 자기 와이프한테 돌아갔네?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길고 긴 인생 여정 중에 겨우 딱 한 달. 서른한 번의 밤과 낮. 744시간. 한토막 같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러나 강렬했던 두 마음.  만나지 못하고 지내는 사이에 평범한 다른 일상에 섞여서 뜨거운 열정은 식는다 하더라도 죽는 날까지 잊히지 않았을 서로의 마음속에 가장 큰 울림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 남의 사랑, 한 줄 요약

: 황진이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자신 있다고 큰 소리 뻥뻥 치던 소세양은, 결국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면서 까지 그녀와의 이별 앞에서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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