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순수한 꿀.
나의 한계를 아는 것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배운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지 않음을 배운다.
우리는 겸손을 배운다.
육체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늘로 오르기를” 욕망하는 것과 동일한 교만이며, 자연스러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살려고 욕망하는 것과 동일한 교만이다.
그래서 문화는 몸이 완벽해 질 수 있다는 거짓말을 팔고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교만 때문에 그 거짓말을 사고 만다.
우리가 영원할 수 있으며,
언제나 나이 들지 않고 결코 주름지지 않으며 늙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곧이듣는다.
우리가 전능할 수 있으며,
늘 생산력이 있고 전혀 피곤치 않아서 쉼이 필요치 않게 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곧이듣는다.
우리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어서
무엇이든 가능하며,
모든 것이 손에 닿아서 놓칠 일도 없다는 거짓말을 곧이듣는다.
우리의 몸이 그게 아님을 상기시켜 주면,
우리 몸이 주름지고 처지고 약해지면,
우리는 우리 몸을 부끄러워한다.
우리를 수치심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하루하루
그동안 겸손이 무엇인지 교만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내 모습에 이따금씩 괴롭기도 하다.
여전히 나는 책을 통해서 규칙을 찾고
해야할 것과 하지 말 것을 얻고자 한다...
그래도 요즘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의 아주 구체적인 부분 속에 교묘히 깃들어 있는 교만의 뿌리를 발견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이 완벽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
내 몸이 내가 정한 미의 기준에 못 미칠 때 -
그래도 내가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귀한 자,
한계를 가진 자임을 기억하고 있는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써,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에 대해 인격적인 책임을 지고 다스리며 통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 피조세계에 대한 위임은 소유자로의 부르심이 아니다. 청지기로의 부르심이다.
“당신이 받은 것을 돌보는”
겸손한 인식으로의 부르심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의존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식량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상호간의 성공은 서로에게 묶여있다.
순수한 꿀,
양봉업자들이 받는 유혹,
꿀에 다른 첨가물을 섞고 싶은 유혹.
가장 꿀 다운 꿀은,
꿀. 그대로 일 때 이다!
ㅡ 시원한 금요일 밤 랜선 리조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