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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Aug 29. 2020

#2. 좀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괭이부리말의 아이들 이야기

너무 유명하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살다보면 으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지만, '제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삶까지도. 삶의 희노애락이 따듯하게(?) 담겨있다. 나는 책 속의 두 인물의 마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묵묵히 곁을 내어주는 영호의 마음과,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 곳을 떠나는 목표를 가졌던 명희의 마음. 모두 너무 공감이 됐다. 또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가 함께 떠올랐다. 높은 지대여서 산동네라고 불렸던 북아현동 - 지금은 재개발이 되었고 다시 그 곳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어 마음이 몽글몽글 추억은 방울방울. ‘짠내난다'라고만 표현할 수는 없는, ‘가난한 시간’. 아픔과 슬픔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괭이부리말아이들>


과연,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나오는 사람들

숙자, 숙희, 숙자 어머니, 숙자 아버지, 동수, 동준이, 영호, 명환이, 명희 선생님, 그리고 호용이.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동수는 항상 동준이와 자기가 살아남을 방법은 강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 잘 듣는 얌전한 아이였을 때, 동수는 동네에서 늘 따돌림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수는 늘 동수와 동준이를 못살게 굴던 아이와 싸워 이겼다. 그러자 하루 만에 동수가 깡다구도 세고 주먹도 세다는 소문이 동네뿐만이 아니라 학교에도 퍼졌다. 그 뒤로 동네 형들도, 친구들도 동수를 더 따돌리지 않았다. (p.102)


동수는 사실 본드 같은 것을 끊으려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 끊을 생각이 없을 뿐이다. 동수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본드를 했다. 본드를 하면서, 가끔 지각만 하던 학교도 그만둬버렸다. 처음엔 형들한테 맞아 가며 억지로 시작했지만, 본드를 마시면 꿈속에서만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다. (p.102)


사실 동수는 영호네 집에 온 뒤로 자주 외로움을 잊었다. 날마다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밤에 함께 잘 사람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도 자꾸 영호네 집에서 나오려고 한 것은 영호마저 동수와 동준이를 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동수는 그래서 일부러 영호에게 마음을 여는 자신을 막고 있었다.  "돈 벌어야지, 그래서 동준이도 데리고 나올 거야. 영호 삼촌이 우릴 버리기 전에." (p.105)


명환이와 동준이는 사람들을 헤집고 지나가면서 간판을 살폈다.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를 지나며 동준이가 명환이를 툭툭 쳤지만 명환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도넛 가게를 지날 땐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철판 볶음밥 집과 김밥집을 지날 때 명환이는 얼굴이 환해졌지만 동준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둘이 피자 가게 앞에 서더니 얼굴이 환해졌다. "피자 사줘?" (p.111)


숙자는 아버지의 얼굴을,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을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숙희는 통곡을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지만, 숙자는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져 손등으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면서도 아버지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p.120)


"이년, 니 년이 남편 잡아먹은거여. 이년아, 애 새끼들 버리고 나갔으면 들어오질 말지, 왜 들어와서 내 아들 잡아가니, 이년." (p.123)


"상담이 꼭 문제아들을 위해 있는 건 아냐. 나는 이런 학교 아이들을 만나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야. 이 동네 아이들은 이미 가망 없는 아이들이 더 많아. 내가 중학교 때 제일 싫어한 말이 뭔지 아니? '너도 괭이부리말 사니?' 였어. 중학교 3년 내내 말썽 부리고 퇴학 맞는 아이들은 몽땅 이 동네 아이들이었어. 너도 생각나지? 우리 5학년 때 선생님이 우리 학교 아이들처럼 머리 나쁘고 지지리 가난한 아이들은 처음이라구 한 거. 그게 사실이야.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 아이들도, 부모들도...." (p.132)


동수는 언제나 그랬다. 아주 잠깐 기쁨을 누리는가 싶으면, 곧바로 슬픈 일이 뒤따라 왔다.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리나 싶으면, 곧 우울하고 억울한 일이 뒤를 이었다. 이번에도 동수는 구치소에서 해발된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또 슬픈 소식을 들어야 했다. 동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래서 난 좋은 일이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나 봐.' 동수는 영호가 자꾸 말을 걸었지만 들은 척 만 척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동수는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를 혼자 삭이느라 애쓰고 있었다. (p.136)


숙자는 고개를 들어 동수를 보며 살포시 웃어 주었다. 동수도 숙자를 따라 웃었다. 동수는 숙자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히려 숙자의 미소가 딱딱하게 굳은 동수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p.140)


아니, 그런 겁이 난 게 아니라, 내 자신한테 겁이 난 거야. 나도 여기 괭이부리말에서 자랐어. 나나 우리 식구들은 괭이부리말에 오는 날부터 목표가 곧 여길 벗어나는 거였어. 그때는 이 동네가 왜 그렇게 구질구질해 보였나 몰라. 여길 벗어나려면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는 길밖에 없다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지." (p.162)


영호가 나보고 '너도 똑같구나' 그랬거든. 우리 어릴 때 선생님들이랑 똑같다는 거야.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괭이부리말 애들은 구제불능'이라는 생각은 어릴 때 선생님들한테 하도 들어서 머리에 박혀버린 것은 아닌가 싶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다시 보려고 노력하게 됐어." (p.163)


"얌마, 니가 우리 집에 와서 처음으로 내 말을 들은 거 아냐."
"삼촌, 착각 말아요. 삼촌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내가 결정한 거예요."
(중략)

영호네 식구들은 모처럼 모두들 희망에 찼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아이들은 학교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구보다 영호가 제일 들떠 있었다. (p.175)


동수는 자꾸만 목구멍을 넘어오는 어머니 생각을 국물과 함께 꿀꺽꿀꺽 삼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가슴 깊이 묻어 두는 편이 나았다. 아직도 동수는 슬픔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움이 몽글몽글 올라오고 나면 늘 뒤이어 원망과 미움이 따라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동수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그리움을 마음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p.210)


숙자야, 나야, 명희.

숙자야, 나는 요즘 날마다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단다. 숙자를 내 곁에 보내 주신 거랑, 숙자처럼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를 첫 제자로 주신 거랑, 모두 모두 고맙다고 말이야. 숙자야, 사랑해.
(중략)

숙자는 카드에 적힌 짧은 글 중에서도 마음에 꼭 드는 말이 있었다. 숙자는 가슴에다가 카드를 갖다 댔다. 팔딱팔딱 뛰는 숙자의 가슴속으로 선생님이 써 준 '사랑해'란 낱말이 새겨졌다. (p.222)


명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 작고 보잘것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명희는 또 숙제가 밀린 아이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p.228)


그렇게 촛불이 하나씩 켜지고 방 안이 점점 더 환해졌다. 촛불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영호도, 명환이도, 숙자 어머니도, 동준이도 모두 한 해 동안 겪은 가슴 아픈 일이 되살아나 울음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그 아픈 기억 속에는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있었다. (p.231)


동네에서 떠도는 말로는 호용이 아버지가 일본에 간 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명희나 영호에게 호용이 아버지가 어디에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호용이는 돌볼 사람이 없고, 그 아이가 명희와 영호 곁에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p.262)


밉게 보려면 한없이 미울 호용이가 명희는 그저 안쓰러웠다. 그래서 명희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번번이 호용이의 떼에 져 버렸다. 호용이에게는 떼를 부리고 잘못을 해도 끝까지 받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번에도 명희는 호용이한테 지고 말았다. 명희는 명환이와 함께 호용이를 데리고 나왔다. (p.265)


괭이부리말로 다시 오기 위해 짐을 싸면서, 10층짜리 아파트에서 다락방으로 이삿짐을 옮기면서 명희는 다짐을 했다. 다시는 혼자 높이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겠다고.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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