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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Sep 06. 2020

#3. 땅힘의 비밀을 찾아서

부숭이의 땅힘


책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속으로 떠나게 될 때와 이야기 속에서 이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다시 생각나게 될 때인 것 같다.


아, 나도 이런 걸 느꼈는데...



똥냄새 많이 나고 슈퍼가 없는, 불편한 시골

어릴 적, 명절이 되면 수많은 인파 사이에 끼어 호남선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시골에 가던 기억이 있다.

친가와 외가는 모두 전라도여서 꽤 긴 여정이었지만내 기억 속 시골 가는 길은 좋은추억으로 남아있다.

도시락과 간식을 한 아름 챙겨서 떠났던 시골 가는 길은 나에게 친척들을 만나는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꿉꿉하고 자연친화적인 ddong 냄새가 나는, 옛날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춘천별빛에서 만난 시골 아이들, 농촌 청년들

장마가 시작되기 전 - 그러니까 코로나 19 2단계도 격상되기 이전인, 7월 중순 즈음에 서울시 청년허브 프로그램을 통해 강원도 춘천 고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2주간 숙식하면서 지역살이와 마을공동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에서는 산골유학이라고 해서, 도시에서 살던 초등생 아이들이 시골의 작은 학교(전교생이 38명)로 전학을 오고, 농가 할머니 댁에서 지내며 그야말로 ‘자유롭게 뛰놀며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나가도록 도와주는 배움터’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산골유학센터, 지역아동센터, 나이들기좋은마을 이렇게 3개의 팀으로 구성된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지역 어르신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주고 계셨다. 또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은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청년들이 직접 지원해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산골유학으로 보냈던 학부모들은 몇 번씩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보면서 귀농/귀촌을 생각하기도 하고, 춘천시내에서 혹은 고탄리 마을로 직접 들어와 살기도 한다고 했다.


시골의 삶과 도시의 삶,

시골에서 자란 아이와 도시에서 자란 아이.

우리는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이라

감히 선단 할 수 있을까?


편견과 경계를 허물도록 도와줬던 이 책,

어른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내게 시간과 재정이 허락된다면 별빛 아이들과 꼭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책 속에 나오는 인물

누리(주인공), 나리, 엄마, 아빠, 할머니, 부숭이, 부숭이 아버지, 부숭이의 친구들


감명 깊었던 문장들


서울로 뭔가를 팔러 왔던 시골 사람들이 하나둘씩 단잠에 곯아떨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깊게 잠들 수 있을까 싶게 제각기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잠을 잤다. 푸성귀가 시든 것처럼 고개를 맥없이 떨어뜨리고 침을 흘리며 자는 아주머니도 있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주먹이 하나 들어갈 만큼 크게 입을 벌리고 자는 아주머니도 있고, 남의 어깨에 기대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고는 할머니도 있었다. (p.121)


“그날 부숭이가 너를 이긴 건 땅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었을 게다.(중략) 그 가방이 그 애한테 얼마나 중요한 가방인지 너는 모르고 그랬겠지만, 남의 물건을 돈의 가치로만 계산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죽은 부숭이 엄마가 병석에서 손수 만들어 준 거야. 가방 살 돈이 없어서 만든 게 아니란다. 가방 말고도 그 애 엄마는 병석에서 부숭이 것을 뭐든지 만들어 주고 싶어 했지. 그 애를 사랑했다는 증표를 남기고 싶었나 봐. 또, 그런 걸 남김으로써 안심하고 눈을 감고 싶었을 거야.” (p.189)

 

“커서 뭐가 되냐는 부모도 함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내가 접시꽃을 좋아한다고 해서 채송화 씨를 뿌려놓고 접시꽃이 움트길 기다려 봤댔자 헛수고 아니겠니? 무엇이 되든  보람을 느끼고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부숭이한테 또 하나 바라는 게 있지. 나는 부숭이가 도시 사람이 되더라도 시골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도시 사람이 되고, 시골에 눌러살더라도 도시 사람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당당한 시골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채송화꽃이 접시꽃한테 주눅 들지 않고, 잣나무가 도토리나무한테 잘난 척하지 않는 게 바로 땅의 큰 힘이란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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