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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Aug 19. 2020

#1.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꼬마제제와의 만남

인상 깊은 구절들의 기록.




아저씨는 아내와 다섯자녀들과 헤어져 혼자 살고 있었다. 홀로 사는 데다가 걸음도 아주 느렸다.

아저씨가 천천히 걷는 게 혹시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은 아닐까? (p.23)


매표소에서 나는 배를 쑥 내밀고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판매원에게 물었다.

"몇 살까지 돈을 안 내도 됩니까?"

"다섯 살까지 입니다."

"그럼 어른 표 한장만 주시오"

난 입장권 대신 오렌지나무 잎사귀 두 장을 따서 안으로 들어갔다. (p.35)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 하느님의 착한 아기예수가 내 안에 태어났으면 하고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꼭 착한 예수가 내게 태어나기를, 아무튼 나도 철이 들면 좀 나아질 것 같기도 했다. (p.43)


내 마음 속의 작은 새 / 악마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어린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사물들과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 속의 작은 새가 말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한 일이었다.

-

"어디로 말하는 거니?"

"나무는 몸 전체로 얘기해. 잎으로도 얘기하고 가지랑 뿌리로도 얘기해. 들어볼래?
그럼 귀를 내 몸에 대어 봐.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거야" (p.47)


루이스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러지 마, 루이스. 울지 마. 넌 왕이야. 아빠가 그러시는데, 네 이름을 루이스라 지은 건

그게 왕의 이름이기 때문이래. 왕이 길바닥에서 울 수 있어? 더군다나 남들 앞에서, 응?"

나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 곱슬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p.64)


'왜 이래야만 할까? 어째서 착한 아기 예수는 날 싫어하는거지?

외양간의 당나귀나 소들까지도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냐고? 내가 악마 같아서 벌을 주는 건가?

만약 내게 벌을 주는거라면 내 동생 루이스에게는 왜 선물을 주지 않는거야?

말도 안돼. 루이스는 이렇게 천사 같은데. 하늘의 천사도 우리 루이스만큼 착하진 못해....' (p.65)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접시를 닦고 있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많이 울었는지 눈이 발개져 있었다.

그래도 울었던 티를 감추며 또또까 형과 내게 말했다.

"아이들은 자야 할 시간이야"

그러고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어른이었다. 그것도 아주 슬픈 어른. 슬픔을 조각조각 맛보아야 하는 어른들뿐이었다. (p.72)


"아빠가 가난뱅이라서 진짜 싫어"

운동화를 떠난 눈길은 그 옆에 놓인 슬리퍼로 옮겨갔다. 아빠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빠의 눈은 슬픔으로 굉장히 커져 있었다. 눈이 커지고 커져서 방구극장의 스크린만 해 보였다.

마음의 쓰라림이 너무나 커서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그런 눈이었다.
"아빠가 거기 계신 줄 몰랐어"
극장 스크린처럼 큰 아빠의 눈동자가 나를 쫒아다니며 쳐다보았다. 눈을 감아도 그 큰 눈이 보였다. (p.74, 75)


주머니에 돈이 생기자 잠시 기운이 솟는 듯 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미 오후 두시가 넘었고 사람들도 제법 많이 오갔지만 구두를 닦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돈을 내고 구두의 먼지를 떨어내려 하지 않았다. (p.79)

새집, 새로운 생활, 작고 소박한 희망

"밍기뉴, 이제 우리는 늘 가까이 살게 됐어. 다른 나무들이 네 발 밑에도 못 따라올 정도로 예쁘게 꾸며줄게.

있잖아 밍기뉴. 난 방금 큰 마차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부드럽게 달리는지 꼭 영화에 나오는 포장마차 같았어.

내가 보고 듣는 걸 모두 네게 얘기해 줄게, 알았지?" (p.92)

아홉시는 좀처럼 되지 않았다. 잠시 공장 생각을 해보았다.

난 공장이 싫었다. 새벽 다섯 시에 울리는 공장의 슬픈 작업 신호는 더욱 싫었다.

공장은 아침에 사람들을 집어삼켰다가 밤이 되면 지친 사람들을 토해 내는 용 같았다. (p.94)


나는 어둠 속에서 나머지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데는 역시 침대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p.97)


"있잖아요 아저씨, 제가 어렸을 땐 제 속에 작은 새가 있어서

그 새가 노래한다고 생각했어요."
"네게 그런 새가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아저씨, 제 얘기는 그게 아니에요. 요즘은 작은 새가 정말 있는지 의심이 간다구요. 어떤 때는 마음속으로

얘기도 하고 보기도 하면서 소리내어 말한단 말이에요"
"내가 설명해주마. 제제. 그게 뭔지 아니? 네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란다. 커가면서 네가 속으로 말하고 보는 것들을 '생각'이라고 해. 생각이 생겼다는 것은 너도 이제 곧 내가 말했던 그 나이.."
"철드는 나이 말인가요?"

"잘 기억하고 있구나. 그땐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생각이 자라고 커서 우리 머리와 마음을 모두 돌보게 돼.

생각은 우리 눈과 인생의 모든 것에 깃들게 돼"
"알겠어요. 그럼 작은 새는요?"
"작은 새는 어린애들이 여러가지 일을 배우는 걸 도와주려고 하느님이 만드신 거에요.

그래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는 그걸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해.

그러면 하느님은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른 꼬마에게 넣어 주시지. 아주 멋진 일 아니니?"
나는 내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흐뭇해서 웃었다.

-

"슈르르까, 나 할 일이 있어서 왔어."
"뭔데?"
"같이 기다리자"

"그래"

나는 밍기뉴의 허리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제제, 우리가 기다리는 게 뭔데?"

"하늘에 아주 예쁜 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것"

"뭘 하게?"

"내 작은 새를 풀어주려고."

"그래, 풀어 줘. 더 이상 새는 필요없어."

우리는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거 어떨까, 밍기뉴?"

잎사귀 모양의 크고 잘생긴 흰 구름 하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밍기뉴."

나는 가슴이 뭉클해져 벌떡 일어나 셔츠를 열었다. 내 메마른 가슴에서 새가 떠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작은 새야 훨훨 날아라. 높이 날아가. 계속 올라가 하느님 손 끝에 앉아.

하나님께서 널 다른 애한테 보내 주실거야. 그러면 너는 내게 그랬듯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겠지.

잘 가, 내 예쁜 작은 새야!"

왠지 가슴이 허전해진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은 영 가시지 않았다. (p.104)

나는 매일매일 일어난 일들을 밍기뉴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주었다. (p.108)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싸움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


"선생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우리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꽃을 사려면 돈이 들고요.. 그리고 전 선생님 병만 늘 비어 있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이 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을거야.

난 이 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거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게 이 꽃을 갖다 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나의 학생이라고.

그럼 됐지?"(p.118)


밍기뉴는 내가 슈르르까라고 불러주면 늘 좋아했다.

그럴 때는 내가 자신을 다른 때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p.157)


"조금만 참아. 치료가 끝나면 음료수랑 케이크를 사 주마.

울지 않으면 영화배우 사진이 박힌 사탕도 사 주마." 그 말에 있는 용기를 다 내었다.


"밍기뉴는 슈르르까에요"

"그러니까 슈르르까가 밍기뉴고, 밍기뉴가 슈르르까란 말이지?"

"밍기뉴는 제 라임오렌지나무에요. 그 애가 굉장히 맘에 들면 슈르르까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너는 밍기뉴라는 라임오렌지나무를 갖고 있단 말이구나" (p.198)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화를 내는 척했다.

"이봐, 넌 내가 아는 애들 중에서 가장 뻔뻔한 녀석이야.

날 뽀르뚜가라고 부르고 싶다 이거야?"

*포르투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아주 친한 사이에서만 쓰인다.

"더 친하게 보이잖아요" (p.200)


"정확히는 몰랐어요. 전 뭐든지 들으면 외우거든요.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어요.

내용은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그런데 아빠는 날 자꾸자꾸 때렸어요. 뽀르뚜가.. 걱정마세요.."

나는 엉엉 울었다.

"걱정 마세요. 죽여 버릴 거니까요"

"무슨 소릴 그렇게 해. 네 아빠를 죽이겠다고?"
"예. 죽일 거에요. 이미 시작했어요. 벅 존스의 권총으로 빵 쏘아 죽이는 그런 건 아니에요.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죠. 그러면 그 사람은 언젠가 죽어요."

"상상력 한번 대단하다, 너" (p.232)


우리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달렸다.

포장도 안 된 좁은 길이었지만 길가의 나무와 풀밭은 아름다웠다.

밝은 태양과 맑게 갠 푸른하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진지냐 할머니가 언젠가 '기쁨은 마음속에 빛나는 태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태양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비춰준다고 했다.

차가 아주 천천히 달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동차마저도 우리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는 것 같았다. (p.236)


"이 나무 이름은 뭐에요, 뽀르뚜가? 이렇게 큰 나무는 세례도 줘야 한다는"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얘기해줄게. 이 나무 이름은 '까를로따 여왕'이야"

"이 나무도 당신한테 말을 해요?" (p.241)


나는 밍기뉴를 사랑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사랑을 준 것만큼 언제나 사랑을 되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있잖아, 밍기뉴, 난 애를 열두명 낳을거야. 거기다 열두명을 또 낳을거야. 알겠니?

우선 첫번째 열두 명은 모두 꼬마로 그냥 있게 할 거고 절대 안 때릴래.

그리고 다음 열두 명은 어른으로 키울거야. 그리고 애들한테 이렇게 물어 봐야지.

넌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 나무꾼? 그럼, 좋아. 여기 도끼하고 체크무늬 셔츠가 있다.

넌 서커스단의 조련사가 되고 싶다고? 알겠다. 여기 채찍과 제복이 있다..."


식은 땀이 흐르고 눈앞에 깜깜해졌다.

식은땀이 온 몸을 적셨고 토하고 싶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위보다도 가슴이 아팠다.


나는 모든 것을 알아챘다. 망가라치바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기차였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가 뽀르뚜가라고 부르도록 허락하고 차에 매달리게 해준 곳에 멈춰 섰다.

나무 뿌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몸을 웅크렸다.
"아기예수, 넌 나쁜 애야. 이번에야말고 네가 하나님이 돼서 태어날 줄 알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거야? 넌 왜 다른 애들은 좋아하면서 나는 좋아하지 않는 거야?

내가 얼마나 착해졌는데. 이제 싸움도 안하고, 욕도 안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아기 예수, 넌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거야?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자른다고 했을 때도 화 안 냈어. 그냥 조금 울었을 뿐이야.....

이젠 어떡해. 이젠 어떡하냐구!"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아기 예수, 내 뽀르뚜가를 돌려 줘. 내 뽀르뚜가를 다시 달란 말이야..." (p.267)


이제는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매를 많이 맞아서 생긴 아픔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유리조각에 찔린 곳을 바늘로 꿰맬 때의 느낌도 아니었다.

아픔이란 가슴 전체가 모두 아린, 그런 것이었다.

아무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죽어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팔과 머리의 기운을 앗아 가고, 베개 위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지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p.270)


어떤 이들에겐 죽는다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몹쓸 기차가 한번 지나가면 그만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은 이다지 어려운 걸까?

내가 가지 못하도록 모두들 내 다리를 붙잡고 있나 봐. (p.274)


나는 흰 꽃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어루만졌다. 난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밍기뉴는 이 꽃으로 내게 작별인사를 전하고 있었다. 밍기뉴도 이제 내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p.285)




때로는 그리움 속에서 어린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언제라도 당신이 나타나셔서 제게 그림딱지와 구슬을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사랑하는 나의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제제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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