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way home
Jun, 2017
방학이 되자 P는 고향 투루판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만나면서도 몇 번이나 방학이 되면 꼭 자기네 집에 놀러 오라고 이야기를 했던 터라, 나도 이번에 함께 친구네 집에 가기로 했다.
친구네 집은 우루무치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4시간 반 정도 걸리는 투루판 지역이다. 투루판*은 너무 더워서 낮 11시~ 5시까지는 아무도 밖을 나가거나 일을 하지 않는 곳으로 유명했다.
*투루판지구 투루판시는 신장 중부, 우루무치 동남쪽에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구는 57만(대부분이 위구르족이다)이다. 분지의 제일 낮은 곳에는 아이딩호(艾丁湖)가 있는데, 바다 평면보다 154m나 낮아 요르단 사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저지이다.
한 여름이면 최고기온이 49도 즈음으로 40도 이상의 고온 시간이 40일 이상 지속된다. 서유기의 무대로도 유명한 화염산은 지면 온도가 높을 때에는 70도에 달한다. 건조한 공기는 투루판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포도, 건포도, 하미과, 긴 섬유 목화가 특산물이기도 하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P의 가족들과 인사를 했다. 친구네 집에는 할머니/할아버지/엄마, 그리고 고모/조카 둘이 살고 계셨다. 마당에는 큰 평상이 놓여있고, 안 쪽에는 가축들을 키우는 우리가 크게 있었고, 마당 양 쪽으로 각각의 방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화통하시고 재밌는 분이셨다. 그런데 중국어는 잘 못하셨다. 친구와 가족들끼리는 위구르어로 대화를 하고 친구는 나를 위해 간단히 중국어로 부지런히 번역을 해주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주 열심히 ㅋㅋ) 그래서 나도 미리 준비해 간 위구르어 언어 책을 보며, 위구르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할머니는 내가 위구르어를 하는 걸 참 좋아하셨다.
내가 친구네 집에 와서, 가장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친구네 엄마였다. 그런데 도착해서 인사를 드린 후에도 엄마는 방 안에서 계속 나오지 않으셨다. (그 이후에도 엄마는 내게 먼저 말을 한 번도 걸지 않으셨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투루판 사람들은 가장 무더운 여름 시즌 12시 - 5시에는 모든 일을 멈추고 실내에서 쉰다. 실제로 바깥 온도는 40도가 넘고,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건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누워있다가 오후 8시쯤, 할머니가 운전하시는 모터 차에 타고 밭으로 갔다.
밭에서 토마토와 양파, 콩줄기 같은 것을 따서 시장에 들러 간단한 음료수와 과자를 사서 집으로 왔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오늘은 방 안이 아닌 평상에서 자기로 했다. 가지가 넓고 많은 나무 아래 내 침대를 마련해주셨다.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거리고 옆에서는 양과 소가 음 메헤헤 울어대는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은 P의 조카와 동네 꼬마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곳에 민속촌*이 있다 하여 아침 일찍 출발했다.
토욕구 민속촌은 위구르족의 전통화 풍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신장(新疆)에서 가장 오래된 위구르족 촌락이다. 비교적 큰 규모의 이슬람 사원 주변에 11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위구르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과 민족적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구경을 하고 돌아와, 집에서 만두를 빚어 먹었다. 우리나라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위구르 문화가 나도 좋았다. 친구는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조카와 동네 아이들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나는 사진으로 친구네 동네, 친구네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두었다.
이 곳에선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자동기상을 했다. 잠에서 깨기 전에 해가 쨍쨍하게 비추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일하러 나가고 안 계신다. (어느 나라나 어른들은 참 부지런하시다)
이 곳에서의 일상이 아주 특별한 것은 없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친한 친구네 집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같이 자고 먹고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으로 이해되는 것들, 받아들여지는 것이 이전과는 달리 더 깊어짐을 느낀다.
다음날, 우리는 샨샨에 있는 사막공원을 가기로 했다. P의 고향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하여,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사막에 놀러 가기로 했다.
샨샨에서 유명한 <쿠무타커사막공원>이었다. 와 이렇게 내 친구 덕분에 난생처음.. 사막을 와 보는구나. 가져간 카메라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추억들도 많이 남겼다.
친구들과 만난 지는 몇 시간 안되었지만, 전 세계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관심사인 꿈, 그리고 결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의 시절에 나도 비전과 꿈, 직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지나왔기에, 이런 대화를 다른 나라 친구들과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친구 집에서의 마지막 날 밤,
엄마/할머니/친구/나 모두가 평상에 모여 잠을 청하기로 하고 밤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그런데 계속 잠자리가 들썩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계속 웃으며 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계속 움직이는 사람은 맨 끝에 누워있는 친구네 엄마였다.
감정이 잘 절제되지 않으셨던 엄마는 무엇인가 생각하시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고 계셨다. 친구는 속상한 듯 혀를 끌끌 차며 엄마에게서 방향을 휙 돌아 등을 지고 애꿎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마지막 날 밤이라 아쉬운 마음과 함께, 내 친구가 그동안 얼마나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보며 힘들어했을지 조금은 느껴져 마음이 시큰하기도 하고 한편 대견하게도 느껴졌다.
나는 P 친구네서 사흘을 지냈다. 우리는 그동안 우루무치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했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우루무치에 돌아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