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에 대하여
"야,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인생의 쓸모에 대해, 아니 내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고찰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나의 어떤 부분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이번주 주말에 '물건의 쓸모'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났다.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전하는 가게 만드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6개월 전에 내가 이태원 디앤디 매장에서 보았던 그 첫인상이 이 책안에 고스란히 텍스트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 매장의 모든 곳에서 각 제품들은 하나하나 그것들이 어떤 쓸모가 있는지 정말 당당히 드러나 있었다. ( =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정말 정말 사고 싶은 물건들이었다.)
저자는 디자이너로써, 생활용품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일본에서 열풍이 일던 재활용품시장에 "디자인의 쓸모"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더해, 지속가능한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처음엔 환영받다가 버려지는 디자인 제품들이 모여드는 재활용품/디자인시장을 표현한 '디자인의 묘지', 대량생산을 거슬러가는 '공예적 생산' 등의 단어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 제품의 첫 단계, 설계하고 만드는 과정을 경험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 제품이 왜 존재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재정의했고, 제품들이 다시 생명력을 얻어 진열대위에 오르게 해주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떨 때를 인생의 삽질을 하는 시간 (필요없는 시간. 헛수고)라 생각하고, 어떨 때에 내 삶이 경작되는 시간 (필요한 시간. 과정) 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러니까, 어떨 때에야 쓸모있다고 느끼는 걸까?
삽질 : “쓸모없는 일을 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한국의 관용어. 삽질이란 어원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상급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규율’을 세우려는 의도로 쓸모 없는 일, 예를 들어 삽으로 구덩이를 판 후, 그걸 메꾸는 등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간혹 공사판에서 중장비를 쓰면 될것을 굳이 몸으로 때워 재정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로 삽을 열심히 드는 것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기경 :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음.
경작 : 잡초를 뽑고 토양을 일궈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땅을 개간하는 행위.
파란만장했던 20대를 보내고, 어엿한 30대중반이 되어가면서 뭔가 명확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진로는 여전히 고민되고 있으며, 앞날에 대한 걱정 또한 크게 줄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아.. 그 땐 참 바보 같았고, 쓸데 없는 시간이었고, 헛수고 했다, 망했다'고 보였던 시간들이, 나의 모난 성격과 나의 내면에 불순물들을 제거하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게 나의 쓸모(?)가 다시 입혀지는 과정들이 생기는 것을 본다. 이게 요즘 느끼는 좀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삽질이었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을, 그 구덩이인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끝내 "좋은 경작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재정의 할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정말 오롯이 내 개인의 몫이리라.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고 존재해 쓸모없다 여겨진 플라스틱 쓰레기도
다시 '재정의'되어 진열대 위에 당당히 오르는데,
그보다 더 존귀한 존재의 의미를 지닌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야말로 창조된 목적대로 회복되어,
연결된 관계와 새로운 관계 속에 다시 생명력있게 썩어져, 훗날 싱싱한 열매로 맺어질 수 있기를!!